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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탐사 27년 '유전의 사나이' 브라질 광구 1점 차로 낙찰 … 놓친 회사에 되팔아 4배 이익

중앙일보 2014.08.09 00:59 종합 16면 지면보기
김태원 SK이노베이션 석유개발 기획실장이 서울 서린동 SK 본사에서 한국 기업의 석유 탐사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SK이노베이션]


십전구패(十戰九敗). 이쯤 되면 실패의 아이콘이 되어야 하지만, 그에겐 늘 성공의 기대가 따라다닌다. 아홉 번 실패해도 한 번 성공하면 로또 같은 성과를 거머쥘 수 있는 사업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황금으로 불리는 석유와 가스를 찾아 광구를 사고 개발하는 일만 올해로 27년째 해오고 있는 김태원(51) SK이노베이션 석유개발(E&P) 기획실장을 서울 서린동 SK 본사에서 만났다.

김태원 SK이노베이션 석유개발 실장



 “실패해도 문책하지 마라.”



 한국 기업의 석유 탐사 역사는 이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SK는 1983년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자원 개발에 나섰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먹고살 길은 직접 석유를 캐는 것이라는 고(故) 최종현 SK 회장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김 실장이 입사한 건 그로부터 5년 후인 88년. ‘1년에 1000억원을 벌면 200억원은 눈감고 투자하라’는 방침이 서 있던 터였다. 이 덕에 김 실장은 입사 직후부터 굵직한 유전개발 현장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쓰디쓴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89년 야심 차게 브라질 아마존 정글 속 유전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지만 땅을 아무리 파도 시장에 내다 팔 만한 기름이 솟질 않았다. 94년 사업을 접으며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도전을 멈출 수 없었다. 2000년 6월 과장이던 그는 30시간을 날아 브라질로 갔다. 브라질 정부가 매각하는 광구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쟁자가 너무 셌다. 덴마크의 대형 석유업체 머스크는 자원개발 시장에서 훌쩍 앞서 있는 업체였다. 그는 “입찰 봉투를 내고 얼마 뒤 입찰장에 우리가 참여한 ‘산타페 스나이더 컨소시엄’이라는 이름이 울렸다”며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머스크와의 차이는 단 1점이었다. 작은 차이는 나중에 엄청난 차이로 이어졌다. 김 실장은 “SK이노베이션은 브라질에서 3개의 광구를 낙찰받아 2011년 24억 달러(약 2조5000억원)에 매각해 4배의 이익을 거뒀다”며 “공교롭게도 이 광구들을 사들인 곳은 1점 차이로 광구를 놓쳤던 머스크였다”고 말했다.



 유전 개발이 광구에서 기름이나 가스를 뽑아내면 그만인 일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손을 저었다. 시추는 기본이고 빠른 판단과 치밀한 기획력, 사업 수완까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96년 페루의 밀림 지역에 있는 카미시아 광구 인수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결정이 빨랐다. 최태원 SK 회장은 보고 2주 만에 투자 결정을 내렸다. 둘째는 상품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광구 인수 후 ‘밀림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가스관으로 끌어와 수출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처음엔 정말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광구에서 수출항까지 거리는 600㎞. 게다가 해발고도 6000m 이상의 고봉이 늘어선 안데스 산맥을 넘는 대공사였다. 복병도 있었다. 가스 배관을 잇기 위해 땅을 파니 토기가 발굴됐다. 남미 고대제국 잉카의 유적이었다. 그는 “원주민과 정글을 침략하는 영화 속 ‘악당’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자원개발 회사가 나쁜 회사가 아니라는 생각을 전해 주고 싶어 발굴된 유물을 모아 박물관을 지어 기증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연결한 배관을 타고 천연가스는 안데스 산맥을 넘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가스 배관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그는 “안데스 산맥을 넘어온 가스는 태평양을 건너 우리나라에도 공급되고 있다”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라주지만 뿌듯하다”고 했다. 페루 광구는 하루 5만3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해내며 SK이노베이션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 실장은 최근 새로운 도전에도 나섰다. 셰일가스로 인해 지난해부터 석유개발 사업에 전환점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자는 생각에 바닥부터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탐사 중심의 전략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석유 개발의 본토인 미국. 2000개의 광구를 모두 훑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하루 생산량 약 3200배럴 규모의 미국 석유 광구 2곳을 3871억원에 사들여 직접 운영에 도전하기로 했다. 지난 6월 말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어 잔금 납부도 마쳤다. 김 실장은 “기존엔 광구를 매입하는 데 그쳤지만 이제 원유 시추, 셰일가스 채굴과 같은 핵심 기술까지 익힐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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