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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박쥐' 날것으로 먹어 에볼라 확산 … 아프리카 주민 "죽어도 식습관 못 바꿔"

중앙일보 2014.08.09 00:56 종합 16면 지면보기
서아프리카 3개 국가(기니·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에서 시작된 에볼라 유행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지난 3월 기니에서 처음 출현한 에볼라는 사망자 932명, 감염자 1711명을 넘었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6일 밝혔다. 사흘 새 사망자 수는 50명이 늘었다. 아직은 서아프리카 지역에 감염·사망자들이 집중돼 있지만 곧 대륙을 넘어 전 세계가 에볼라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유럽(스페인)과 아시아(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에볼라 감염자가 발생한 7일, 미국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후 처음으로 에볼라 경보를 최고 단계인 ‘레벨 1’으로 격상시키며 인력과 물자를 전방위로 투입하기로 했다.


동물이 옮기는 치명적인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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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볼라 바이러스는 애초에 야생박쥐의 일종인 과일박쥐 몸속에서 서식하기 시작했다. 과일박쥐는 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이 즐겨 먹는 식량인데, 과일·꽃가루·꽃에서 나오는 꿀 등을 먹어 과일박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서아프리카 주민들은 오늘날에도 과일박쥐·원숭이 같은 야생동물을 날것 그대로 먹는 습관이 있다. 에볼라는 결국 과일박쥐를 즐겨 먹는 열대우림 지역 주민들 때문에 삽시간에 서아프리카로 퍼질 수 있었다. 과일박쥐를 먹은 고릴라·침팬지·호저로부터 사람이 에볼라에 2차 감염되는 것도 가능하다. 영국 가디언지는 “에볼라 확산을 멈추게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아프리카 현지 주민들이 과일박쥐와 설치류를 섭취하지 못하게 하고, 양·염소·돼지 등 가축 생산을 하게 도와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죽어야 한다면 죽겠지만 전통을 버리는 것은 논외의 문제”라며 식생활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동물을 매개로 하는 전염병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스페인에서 시작된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보다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일으킨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도 3·1운동 직후에 740만 명이 스페인독감에 감염됐고 그중 30만 명이 사망했다. 스페인독감이 인류를 휩쓴 87년 뒤인 2005년, 미국의 한 연구팀은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한 여성의 시신 속에서 바이러스를 채취했다. 연구진은 스페인독감이 조류독감의 한 종류인 H1N1형 인플루엔자A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5년 아시아를 휩쓴 조류독감(H5N1)과 거의 일치한다. 이들 조류독감은 철새의 배설물에서 시작됐다.



 2003년 중국·홍콩 등 아시아에서 유행해 775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중국 남부 광둥성 한 동굴의 박쥐에서 시작됐다. 박쥐에 있던 사스 바이러스는 근처 사향고양이로 옮겨갔고, 이 고양이를 요리하던 요리사가 사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본격적으로 사스가 퍼지기 시작한 건 이 요리사를 치료한 중국인 의사 류젠룬 때문이었다. 광둥성에서 사스 환자를 치료하던 류젠룬은 2003년 2월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으로 향했다. 홍콩 메트로폴 호텔에서 류젠룬과 같은 9층에 머물렀던 투숙객들이 사스에 곧장 감염됐다. 투숙객들이 홍콩·베트남 등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사스는 단 사흘 만에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게 됐다. 지난 4월 중동아시아에서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코로나(MERS-CoV) 바이러스의 원인도 박쥐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바이러스를 급속히 옮긴 중간 매개 동물로는 낙타가 지목되기도 했다. 에이즈를 유발하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1200만 년 전 아프리카 원숭이에서 처음 시작됐다. 침팬지·고릴라 등 영장류가 오래전 HIV와 유사한 렌티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다고 영국의 한 연구팀이 지난해 밝혀냈다. 20세기 들어 전염병은 유독 판데믹(Pandemic·대유행)을 자주 일으켰다. 이는 문명의 발달과 관련 있다.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인구는 밀집됐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지면서 특정 지역의 풍토병(Endemic)이 빠른 속도로 유행병(Epidemic)으로 번지게 된다는 것이다. 에볼라는 76년 최초로 발생했을 때만 해도 가봉·수단·우간다에서만 국소적으로 발생하고 소멸했다. 2014년엔 에볼라에 감염된 기니인이 죽은 원숭이를 들고 버스로 이웃 마을과 이웃 도시로 이동하고 국경까지 쉽게 넘어간다. 부족 하나만 전멸하고 끝났을 법한 전염병이 오늘날엔 대륙 전체로 퍼지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개발로 아프리카 밀림, 열대우림이 파괴된 것도 문제다. 밀림에 숨어 있던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인류에게까지 재빨리 도달하면서 바이러스의 발달을 촉진시킨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바이러스는 계속 유전자 배열을 바꾸고 진화하며 치사율을 높여가고 있다.



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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