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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원자력 딜레마

중앙일보 2014.08.09 00:55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100일이 훌쩍 넘은 세월호 사건이 아직도 안갯속이라, 다른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하다. 그러나 어쩌랴. 그래도 지구는 도는 것을…. 얼마 전 일본의 전·현직 총리들이 원전 재가동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간 나오토(菅直人),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등 5명의 찬반 대립이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센다이 원전 1·2호기의 안전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자, 전직 총리 4명이 우려를 표명하며 ‘원전 제로’에 나선다고 밝힌 것이다. 곧이어 원전업체 비자금이 정치권에 흘러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가운데 해당 지역 주민에게는 요오드제가 공급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원자력 르네상스’를 꿈꾸던 글로벌 원전업계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그 당시 필자는 『원자력 딜레마』라는 책을 썼다. 원자력 딜레마는 결코 단순치 않다. 일본 원전정책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원자력 확대정책의 고·스톱 사이의 딜레마나 ‘사용후 핵연료가 자원이냐 폐기물이냐’의 딜레마가 그렇다.



 원전산업의 전망은 어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하면 현재 31개국에서 436기 원자로 가동에 71기 건설 중, 172기 계획, 309기가 제안 단계에 있다. 이대로 간다면 쇠퇴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100기 가동에 5기 건설 중이다. 그 다음 프랑스는 58기 가동에 1기 건설, 일본은 48기 가동에 2기 건설, 러시아는 33기 가동에 10기 건설 중이다. 우리는 23기 가동에 5기 건설 중으로, 발전량 기준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중국은 돌진하고 있다. 최근 21기 가동으로 급증한 데다 29기 건설 중, 57기 계획, 118기 제안 단계다. 건설 중인 것만도 세계의 40%를 차지한다. 중국이 최대 원전 보유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앞으로 우리 서해 쪽으로 병풍을 두르게 될 텐데, 동북아 원전 클러스터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머지않아 원전 가동국은 48개국이 된다.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는 국가는 35개국 이상으로 평가된다.



 다른 한편으로 탈원전 국가도 있다. 독일·스위스·벨기에 등이다. 실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탈원전을 천명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본격 실행하게 된 것이다. 이들 국가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높다. 스위스와 벨기에는 에너지 해외 의존도와 원전 의존도가 모두 높다. 어찌 탈원전을 할까 싶지만, 재생에너지 등의 연구개발 투자 능력과 기술 자립도가 높다.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20% 달성이라는 유럽연합(EU)의 정책 목표와도 손발이 맞는다. 안전과 환경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탄탄하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나온 자료 중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세계 원전 분포지역 주변의 지진 발생 기록, 그리고 원전 부지 인근의 인구밀도 분석이다. 일본은 앞부분에서 걸렸고, 우리나라는 뒷부분이 켕긴다. 대형사고의 역사적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상황이고 보니, 해당 지역사회의 불안을 해소하고 합의를 구하는 일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원전 사고 확률은 비행기 사고 등과 비교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비행기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지만, 원자력 사고는 그렇지 않다. 비행기는 장거리 여행을 위해 타야 하지만, 전기는 다른 에너지원으로도 얻을 수 있다. 자동차 사고는 스스로 조심하고 자신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원전의 운영은 시민으로서 권한도 통제력도 없다. 더욱이 원전시설 지역주민으로서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 공공의 목적을 위해 잠재적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다.



 원전은 기술위험의 전형이자 발전지향과 생태주의의 가치가 충돌하는 분야다. 그래서 어렵다. 정량화되기 어려운 사회문화적·경제적·정치적·역사적·외교안보적·지역적 요인이 두루 얽힌 고차방정식의 해법 찾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특히 중요하다. 공자의 명언대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해외 논문을 보니 신뢰 쌓기 비법이 이렇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게 믿음직한 언행을 하라. 정확하고 진솔하고 투명하게 의사소통을 하라. 상대방에게 공통의 명분과 정체성, 지위를 부여하라. 합작의 성과와 목표를 함께 창출하라. 공유된 가치와 정서적인 매력요인을 만들어내라.” 이쯤 되면 전인적(全人的)인 능력의 리더십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얘긴데, 그런 거버넌스(協治)를 구현할 수 있을지 그것이 성패의 열쇠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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