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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 다리 다쳤다던 병사 … 옷 벗겨보니 온몸이 멍"

중앙일보 2014.08.08 02:13 종합 4면 지면보기
“다리에 멍이 든 병사가 작업 도중 다쳤다며 찾아온 적이 있어요. 혹시나 싶어 상의를 벗겨 봤더니 온몸이 멍투성이더라고요. 한눈에 보기에도 구타를 당한 게 분명했죠. 그런데도 그 병사는 끝까지 맞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선 부대 군의관들이 본 실태
대부분 보복 두려워 맞은 사실 부인
가해 선임병이 진료실 따라오기도
환자 10명 중 1~2명은 구타 의심

 지난해 4월까지 강원도 부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L씨는 7일 기자에게 “군대에서 구타·가혹행위는 흔한 일상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3년여간의 군 복무기간 중 수십 명의 구타 피해 의심 병사를 진찰했다”며 “대부분 몸 곳곳에 멍이 들어 있거나 입술 등이 터져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L씨는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 대다수가 군의관이 추궁해도 입을 닫아 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의사 입장에선 상처만 봐도 폭력에 의한 것인지 대략 알 수 있지만 당사자가 입을 열지 않으면 구타 등을 밝혀 내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군의관은 병영에서 군인들을 진료하는 의사다. 의과대학을 마친 뒤 인턴이나 레지던트 과정을 끝내고 중위 또는 대위 계급으로 임관하는 게 일반적이다.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해당 부대 군의관이 환자를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된다.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 병사들을 가장 먼저 진료하는 것도 바로 이들이다.



 육군에서 지난해까지 군의관으로 근무한 K씨는 “부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환자 10명 중 1~2명은 가혹행위·구타 피해 의심 병사”라며 “상당수는 신체적 외상뿐만 아니라 정신질환도 동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구타를 당해 다쳐도 거짓말로 둘러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폭력으로 생긴 상처가 분명한데도 운동을 하다 다쳤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걸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해병대 가혹행위 직권조사에서도 군의관들은 이와 비슷한 진술을 했다. 당시 해병대 1사단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한 S씨는 “이병이나 일병 정도의 낮은 계급의 병사들이 고막 천공(찢어짐), 대퇴부(허벅지) 파열, 안면부(얼굴) 타박상 등으로 찾아오면 대부분 구타당한 흔적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군의관 P씨도 “통상 군의관들이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처음엔 축구하다가 다쳤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며 “축구로 얼버무리는 건 십중팔구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진술했다.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해도 군의관을 찾아올 수 없는 병사들도 많다. 2012년 말까지 육군 부대에서 근무한 Y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분대장이나 지휘관의 허락부터 받아야 하는데 낮은 계급의 병사들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작은 부대의 의무실 같은 경우에는 선임병이 아예 진료실까지 따라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본인이 맞았다고 실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군의관들은 “현재의 군 진료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L씨는 “군의관 대다수가 하루하루 업무에 허덕이고 있다”며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한 각종 가혹행위를 일일이 밝혀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육군에서 복무 중인 또 다른 K씨는 “군의관은 보고의무가 있는 군인인 동시에 환자의 진료기록을 보호해 줘야 할 의사”라며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진료 시 들은 내용을 비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석승·윤정민 기자

공현정(이화여대 정치외교학)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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