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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제 질서 불안정에 위기를 관리하려면

중앙일보 2014.08.08 00:36 종합 29면 지면보기
신각수
전 주일대사
법무법인 세종 고문
최근 세계 도처의 다양한 분쟁으로 국제 질서가 어지럽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반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말레이시아 민항기 격추로 더욱 꼬이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국경에도 힘의 공백을 틈타 이슬람 과격파가 신정정치를 내세워 알말리키 정권을 위협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어느 국가보다 국제 질서의 안정이 중요한 우리로서는 이런 국제적 혼란의 배경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대혼란의 근본 배경은 국제 질서와 그 주체인 국가가 이중으로 원심화(遠心化) 현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 질서의 원심화에 따라 미국 중심의 일극구조가 중층적 다극구조로 변모하고 있다. 약화되는 미국 경제는 미국의 대외정책 수행능력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미국 내 여론도 대외문제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졌다. 미국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9500억 달러의 군비 감축이 불가피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한적 개입을 강조한 외교안보 정책을 발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유럽과 일본도 ‘유로화 위기’와 ‘잃어버린 20년’으로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었다. 반면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가의 대두는 국제 질서의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 선진국 그룹의 침체와 개도국의 대두(rise of the rest)는 국제 권력을 분산시켜 국제 질서의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고도로 성숙한 선진국 경제는 높은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에 신흥국과 개도국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크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힘의 분산과 전이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국가의 권력도 여러 차원에서 원심화의 도전을 받고 있다. 21세기 큰 흐름인 세계화·지역화·지방화로 인해 국가들이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 이래 누려왔던 국제 질서상의 독점적 지위가 약화되고 있다. 우선, 세계화로 인해 전통적 의미의 국내 문제 영역은 대폭 축소되었다. 지역화가 진행됨에 따라 국가 기능을 제약하는 부문도 늘어났다. 또한 정보화의 진전으로 국가 이외의 다양한 주체들이 마치 국가처럼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었다. 테러단체인 알카에다가 활개를 치는 게 단적인 예다. 최근 시리아·이라크·리비아·우크라이나에서 보듯이 다양한 민족·종교·인종·문화로 얽혀 있는 국가는 일단 통합이 깨지면 실패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또한 실패국가로 전락하면 국가 재건은 매우 어렵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 경제제재는 유럽과 미국에도 상당한 경제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아디다스는 러시아 매장을 줄이면서 주가가 15% 급락하였다. 다양한 중동 위기는 석유 가격 불안정으로 연결될 것이다. 현대무기와 풍부한 자금으로 무장한 테러단체의 출현으로 국제테러 위협도 높아질 우려가 크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국제 질서의 구조적 취약성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에너지·자원·식량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수출과 해외 투자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750만 해외동포와 연 1400만 해외여행객이 있다.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인도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국제 질서에 대비하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첫째, 무역이나 투자 대상 국가의 국가위험도(country risk)를 잘 따져야 한다. 민족·종교·인종·문화적 다양성이 높은 국가 가운데 통합에 어려움이 있는 나라는 위험성이 높다. 또한 주요 국가들 간 영향력 경쟁의 단층선에 위치하는 국가들도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둘째, 위험 분산 차원에서 공급망 다변화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 기업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태국 홍수로 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전체 제조공정을 멈추어야 했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셋째, 위험대비(hedge) 전략을 잘 구사해야 한다. 불안정한 국제 현실에 비추어 안전지역 위주로 진출하고, 높아지는 불가측성을 감안해 위험회피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위기에 대비한 대체(backup) 계획을 세워놓아야 한다. 위기가 발생한 뒤의 대응은 선택의 폭도 좁고 더 많은 비용을 수반한다. 다섯째,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이나 개인은 안전문제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내전·테러·납치·자연재해 등 다양한 위협을 염두에 두고 대비책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여섯째, 불안정한 상황일수록 정보의 가치는 올라간다. 본국과 해외, 민간과 정부 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과 마인드가 중요하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국제정세의 불안정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준비하고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효율적인 위기관리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위기관리를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여겨야 한다.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긴밀한 협업을 모색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법무법인 세종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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