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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박원순령, 김영란법 구원할까

중앙일보 2014.08.08 00:30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6일 오전 10시30분 서울시청 브리핑룸. 박원순 시장이 나와 ‘서울시 공직사회 혁신대책’을 발표한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로 넘겨졌으나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시작이 의미 있는 나비효과가 되어 공직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론은 이날 발표된 대책을 ‘서울시판 김영란법’이라고 했다. 이 법안의 입법 취지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직무 관련성 없는 금품을 받아도 처벌하고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부모·자녀까지 청탁금지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서울시 대책에는 ‘단돈 1000원이라도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다면 대가성·직무관련성을 가리지 않고 처벌한다’같이 김영란법보다 더 나간 내용도 포함돼 있다.



 박 시장의 ‘나비’ 비유는 타당해 보인다. 서울시 대책은 (당연히) 법령 형태가 아니다. 김영란법의 취지를 살린 지방정부의 행동강령·규칙에 불과하다. 어떤 내용은 구속력이 있지만 어떤 조항은 선언적 의미에 그친다. 상위법의 근거가 없거나 미약한 강령·규칙이어서 법적 다툼의 소지도 있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을 뭉개고 있는 국회에 아픈 자극임에 틀림없다.



 2012년 8월 국민권익위원회는 부정청탁을 방지하기 위한 획기적인 법안을 입법 예고한다. 당시 위원장이 김영란 전 대법관이었다. 고위공무원이나 법조인이 업자에게 수천만, 수억원대 금품·향응을 제공받아도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부조리를 막기 위한 법안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빛을 못 보던 법안은 박근혜 정부 들어 일부 내용을 바꾼 정부안 형태로 국회로 넘어갔다.



 이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줄곧 벌어진다. 박 대통령이 세 차례나 김영란법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의화 국회의장도 비슷한 발언을 한다. 여야 원내대표 역시 조속한 처리를 약속한다. 여론조사를 해도 10명 중 7명은 법안에 찬성한다. 국민과 국정책임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법안이 만 2년간 여의도에서 표류하는 기(奇)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김영란법의 표류는 여야·보혁 같은 기존의 이분법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모든 입법자가 김영란법을 지지하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딴판이 된다. 여야와 보혁이 모자이크 된 현실론이 김영란법을 막아선다. 현실론자는 정당을 불문하고 법조인·관료 출신이 많다. 그들은 국민에게 들리지 않는 낮은, 그러나 무게가 실린 목소리로 말한다.



 “법 체계의 생명은 신뢰다. 김영란법은 다른 법과 충돌한다.”



 “적용 대상자가 너무 많다. 사회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



 “직무 관련성 없는 금품수수 처벌은 과잉입법의 전형이다.”



 현실론자의 눈에는 김영란법은 문제투성이다. 국민 다수가 원하고, 시대가 필요로 하며, 미래세대에 도움이 된다면 이런 문제쯤은 조정하면 됐었다. 시기·대상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면 됐었다. 하지만 현실론에 직면한 김영란법은 만 2 년간 후퇴도 전진도 못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외나무 다리에서 장애물을 만났을 때 택할 수 있는 ‘교착 해소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장애물을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버리든지 장애물과 타협해 스스로 물러나게 하든지다. 대통령·정당 지도부가 나서 두 가지 방법을 다 썼지만 교착상태를 돌파하지 못했다.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다면 외부의 힘으로 외나무다리를 흔드는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일지라도 작은 기류를 만들어 변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서울시청의 몸짓이 여의도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하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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