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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박근혜의 '천막청와대'

중앙일보 2014.08.08 00:25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진국
대기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카드 게임으로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그의 수행비서였던 레지 러브가 “빈 라덴 사살작전 때 오바마가 ‘난 이렇게 오랜 시간 비디오를 볼 순 없다’며 카드 게임 하러 갔다”고 공개한 것이다. 긴박한 군사작전 도중에 카드 게임이라니…. 하지만 백악관은 이에 대해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대신 당시 상황실에 있던 마이클 라이터 전 국가대테러센터 소장이 ‘오바마 대통령은 작전 과정을 전부 지켜봤다’고 증언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쟁으로 번질 일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말썽이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4월 16일. 박 대통령은 오전 10시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다. 오후 5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유선과 서면으로 24차례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면보고는 없었다. 위급 상황인데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보고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느냐고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그(대통령이 있었던) 위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답변한 것이 의혹을 키웠다.



 사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억측이 억측을 낳아 스캔들로 포장되고 있다. ‘7시간’에 뭔가 대단한 비밀이 감춰져 있는 듯이 부풀려지고 있다. 의료시술과 관련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급기야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지난 3일 공개적으로 기사화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 마치 연예인의 스캔들을 다루는 기사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없다. 국회 질의·답변과 인터넷에서 떠도는 얘기를 짜깁기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그 내용이 다시 국내에 퍼지며 사실인 양 증폭되고 있다.



 새누리당 인사들의 발언이 불을 더 지폈다. “대통령의 사생활을 얘기하겠다는 거 아니냐”(조원진 세월호특위 새누리당 간사),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초별로 다 까발리는 게 온당하다고 보나”(이완구 원내대표)라는 말이 오히려 스캔들 냄새를 피운 것이다.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정윤회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대선 이후 박 대통령과 접촉한 건 당선 후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를 한 번 한 게 전부”라고 말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미 국회 운영위에서 몇 시간 동안 추궁당했다. 그런데 야당은 청문회에서 다시 따지겠다고 한다. 김 실장은 대통령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라고 눙치고 넘어갈 일도 아니다. 시중의 떠도는 소문이 사실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국민이 실망하지 않게 설명해 주든지, 최소한 야당 대표에게 비공개로라도 상황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백 명이 생사기로에 서 있고 구출작업이 경각을 다투는 상황에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웠다면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태를 파악한 것은 오후 늦게다. 정부는 오후 1시30분까지도 승객 대부분이 구조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3시30분에야 잘못된 걸 알았다. 3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를 정리해 발표한 건 그보다 한 시간 더 뒤다. 대통령이 중대본을 방문하기 30분 전이다. 상황 파악을 못 하고 허둥댄 것을 추궁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때까지 상황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24번이나 보고를 하면서 아무도 대통령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김기춘 실장은 “집무실이 떨어져 있어 서면보고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비서실장이나 수석비서관도 대통령을 만나려면 전화로 예약하고 자동차를 타고 간다. 중간에 경비실도 거쳐야 한다. 구중궁궐이 따로 없다. 그래서야 무슨 소통을 이야기할 수 있나. ‘7시간 미스터리’도 이런 구조에서 나온 것 아닌가.



 지금 청와대 본관 정도면 비서실장과 주요 수석비서관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세계를 경영하는 백악관이라고 넓은 게 아니다. 빈 라덴 사살작전 때 백악관 상황실 사진을 보면 오바마는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 국가안보회의의 요인 10여 명이 작전을 지켜봤지만 자리에 앉은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 한가운데 의자는 합동특수사령부 마셜 웹 준장이 차지했다. 집무실을, 자리를 서열 중심이 아니고 일 위주로 배치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천막당사에서 7%대로 추락한 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천막당사가 호화로운 당사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인 면이 있었다. 지금 청와대는 경호 위주로, 권위를 과시하게 만들어졌다. 업무 위주로 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 굳이 큰 공사가 필요 없다. 그래도 ‘천막 청와대’보다야 훨씬 나을 것 아닌가.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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