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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의 창작과정 보며 ‘나만의 샤넬’ 찾으세요

중앙일보 2014.08.08 00:03 Week& 7면 지면보기


서울서 ‘문화 샤넬전’ 기획한 장루이 프로망



프랑스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1883~1971). 사후 40여 년이 지났지만 요즘 왕성하게 활동하는 웬만한 디자이너보다 그의 존재감은 더 크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유명 브랜드 ‘샤넬’이다. 브랜드가 다는 아니다. 샤넬은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 카바레 무명 가수가 됐다. 이내 모자 디자이너로 전향,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당대 유럽 귀족·부호 남성 여럿과 염문도 뿌렸다.



영화배우 메릴린 먼로가 ‘샤넬 넘버5’ 향수를 뿌리는 모습이다. 1955년 3월 24일 사진가 에드 페인거시가 촬영했다. [사진 마이클 옥스 아카이브/게티이미지/에드 페인거시 (Micahel Ochs Archives/Getty Images/Ed Feingersh)]
한편으로 기구하고 때론 화려한 샤넬 스토리는 여러 차례 소설·영화의 소재가 됐다. 영화만 해도 ‘샤넬’ (Chanel Solitaire·1981), ‘코코 샤넬’(Coco Chanel·2008), ‘코코 샤넬’(Coco Avant Chanel·2009), ‘샤넬과 스트라빈스키’(Coco Chanel&Igor Stravinsky·2009) 등 4편이다. 브랜드 ‘샤넬’은 2007년부터 그의 인생 전체 혹은 부분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아 전시를 열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국 베이징·상하이, 프랑스 파리를 거친 전시가 이번엔 서울에 왔다. 회화·조각·사진·동영상·책·소품 등 500여 점이 동원된 이번 전시에는 ‘문화 샤넬전-장소의 정신’이란 이름이 붙었다.



서울 을지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오는 30일 개막해 10월 5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예술감독 장루이 프로망을 만나 전시에 대해 미리 알아봤다. 프랑스 파리 시내 한복판 캉봉가(街)에 있는 ‘샤넬 아파트’에서다. 샤넬이 죽기 전까지 실제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왜 서울인가.



‘샤넬’이 2001년 가을ㆍ겨울 기성복 컬렉션에 선보인 클러치와 스웨터다. 오른쪽 스웨터와 그 위에 걸린 클러치에는 패션사진가 호르스트 호르스트가 그린 가브리엘 샤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왼쪽 아래 클러치는 2013년 봄ㆍ여름용으로 나온 ‘보이 브릭’ 클러치다. [사진 샤넬/파트리샤 카니노(CHANEL/Patricia Canino)]
“서울은 공상과학 소설 같은, 미래 도시 느낌이다. 정말 젊은 도시다. 전시 전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또 전시장인 DDP는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현대성을 제대로 표현한 공간이다. 이 장소가 서울이란 도시에 또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 공간을 품은 건 서울이 정말 문화적으로 대담한 도시라는 걸 상징한다. ‘샤넬’이란 브랜드 전체가 서울의 현대성과 대담함에 동참하고 싶었다.”



-다른 도시에서 열렸던 ‘문화 샤넬전’은 패션, 화장품과 향수, 시계·보석 등 특정 분야를 따로 떼 주제로 삼았다. 한데 서울 전시는 모든 분야를 망라한 샤넬 사상 최대의 전시다.



“사실 서울이란 도시와 샤넬은 어떤 관련도 없다. 한국인이 샤넬 가방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 말고는. 하지만 러시아·이탈리아·미국 등을 여행하고 예술가와 교류했던 가브리엘 샤넬이 서울에 왔다면 지금 서울의 다름, 독특한 비전을 발견하고 널리 퍼뜨렸을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서울 전시를 더욱 특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전시로 준비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카바레 가수 시절 자주 불렀던 노래 ‘누가 코코를 보았는가-개를 위한 애가’의 포스터. 1878. [사진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장소의 정신’이란.



“서울 전시를 통해 장소·도시·자연경관·집 이런 것들이 샤넬의 창작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전달하고자 한다. 여기 샤넬 아파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둘러봐라. 코코(가브리엘 샤넬의 애칭)가 영감을 얻은 모든 게 있다. 연인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 그가 읽었던 책, 다른 장소로 여행을 가서 사 모은 조각상이나 소품 같은 것이다. 장소는 보이지만 정신은 보이지 않는다. 전시에선 코코의 아이디어, 정신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줄 것이다.”



-샤넬이 이렇게 큰 기획 전시의 주인공 혹은 주제가 될 수 있나. 일종의 마케팅 아닌가.



“예술 전시라 부른 적이 없다. 하지만 마케팅만은 결코 아니다. 어떤 작가의 예술 작품이 갤러리에 전시되면 홍보가 되지 않나. 이 전시를 통해 브랜드 샤넬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는 그 정도 상업적 효과에 그친다. ‘문화 샤넬전’은 여러 가지 예술품을 여성 예술가 코코와 연관해 보여주는 전시다. 샤넬은 프랑스 문화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현대 여성사에도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de Toulouse-Lautrec)이 그린 ‘앉아 있는 여자 어릿광대’, 석판화, 1896. [사진 프랑스 국립도서관 (BnF, Dist. RMN-Grand Palais)]
- 어떤 점에서 그런가.



“가브리엘 샤넬은 현대 패션의 창조자이면서 여성 역사를 바꾼 인물이다. 작가·화가가 작품으로 기존의 상식을 바꿔 놓는 그런 것 있지 않나. 명품·패션에 있어서 샤넬이 그랬다. 고객의 기호에 맞춰 만들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창작자가 먼저 고안한 것으로 고객을 유혹했다. 샤넬은 창작자로서 자신의 취향·안목에 고객이 따르게 했던 사람이다. 또 샤넬은 여성 창작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가 태어나기 10년쯤 전에 인상파 운동이 시작됐다.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던 때다. 19세기 활동한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는 전위적인 회화를 시작한 최초의 여류 화가다. 여성이 자유를 표현하기 시작했고 코코 역시 그랬다. 그는 당대 예술가와 교류했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 그런 의미에서 코코 자체가 프랑스 문화 유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10개의 장(章)으로 구성된 이 전시에선 샤넬 탄생 후 현대 예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고 또 격변의 시기에 무엇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영화 배우 니콜 키드먼이 ‘샤넬’에서 나온 1985년 봄ㆍ여름 고급 맞춤복 드레스를 입었다. 유명 작가 스티븐 마이젤이 찍은 사진이다. 2001. [사진 스티븐 마이젤/아트커머스/니콜 키드먼(Steven
Meisel/Art+Commerce/Nicole Kidman)]
- 반드시 눈 여겨 보라고 추천할 만한 작품은.



“‘문화 샤넬전’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이 등장할 것이다. 아파트와 관련한 내용도 있을 것이고 의상·보석도 있을 것이다. 흰 바탕에 푸른색 가로줄이 들어간 티셔츠인 ‘샤넬 룩’이란 게 있다. 해군 수병들이 입던 편한 복장인데, 이것도 예술 작품으로 전시될 것이다. 평범하고 빈한한 사람들의 의복을 샤넬이 고급 패션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남성만 누리던 패션을 여성이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코코보다 수십 년 이후 활동한 패션 디자이너 장폴 고티에도 이 차림을 매우 좋아했다. 코코가 없었으면, 그가 만들고 입고 보여주지 않았다면 우리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 전시를 보기 전에 근현대 문화사를 공부하면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겠다.



“아니 걱정 마시라. 절대 그렇게 할 필요 없다. 산책을 하듯 10개의 장소를 걸어라. 다른 공간, 다른 생각을 발견할 여지가 있는 전시다. 여기에서 모두가 ‘나만의 샤넬’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파리=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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