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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못 잡는 불꽃감지기 … '국가 심장부' 200곳에 설치

중앙일보 2014.08.07 02:30 종합 10면 지면보기
서울 숭례문 처마 끝에 K사 불꽃감지기가 달려 있다. 문화재청은 소실된 숭례문을 복원하면서 16개의 불꽃감지기를 설치했다. [장련성 인턴기자]


숭례문과 국회의사당, 정부세종청사, 신고리·고리·울진·영광 원자력발전소 등 주요 시설물의 안전에 구멍이 뚫렸다. 본지 취재 결과 국가 주요 문화재와 핵심기반·다중운집 시설 등 200여 곳에 불량 불꽃감지기 2만여 대가 납품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 방재업체 K사 압수수색
원전·제철소·정부세종청사·국회
‘화재 악몽’ 숭례문 등에 2만 개 납품



 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1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소방방재 전문업체인 K사 본사와 연구실, 생산공장 등을 압수수색한 뒤 K사 관계자 등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압수한 제품과 설계도, 회로도, 컴퓨터 파일 등을 분석해 이 업체가 불량 제품을 제조·판매한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초 주요 국가 시설에 설치된 불꽃감지기가 기준치에 미달하는 불량 제품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벌여왔다. 불꽃감지기는 일정 거리와 각도에서 일어나는 라이터·성냥 등의 불꽃을 포착하는 고가(대당 200만~250만원)의 첨단 방재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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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비를 설치하면 화재가 났을 때 불꽃에서 발생하는 특정 파장(적외선·자외선 등)을 감지해 경고음이 울린다. 동시에 관내 소방서와 해당 시설물 관리사무실로 자동 통보돼 화재를 초기에 진압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발명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기념식에 출품된 불꽃감지기를 보고 “숭례문에도 설치돼 있느냐”고 물은 뒤 “조그만 불씨만 있어도 신속하게 알 수 있군요”라며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K사의 불꽃감지기 시장점유율은 40%에 달한다. 이 회사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문제가 있는 감지기를 납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숭례문과 원자력발전소 외에도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과 서울 종로의 운현궁, 남산골 한옥마을, 전북 김제 금산사, 영흥·율촌·울산·분당·포천 등 화력발전소 10곳에도 이 회사 제품이 들어가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주요 시설물에 K사 불꽃감지기가 설치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K사가 납품한 불꽃감지기가 실제 불꽃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경찰이 K사에서 압수한 불꽃감지기 500여 대에 대한 테스트를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에 의뢰한 결과 압수 제품 대다수가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사는 불꽃감지기에 장착된 센서의 감도(感度·외부 자극을 느끼는 정도)가 낮아지도록 관련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뒤 현장에 설치해 왔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회로 설계 등과 관련된 K사의 기술력이 떨어지다 보니 작동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작동되는 등 감지기가 과반응을 자주 일으켰고 이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센서의 감도를 낮췄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가로등 불빛 같은 작은 빛에도 경보가 울리는 등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며 “이런 심각한 오류를 숨기기 위해 감도를 낮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일부 제품은 설계대로 신형 센서를 장착해 KFI의 성능시험을 통과한 뒤 실제 납품할 때는 설계와 다른 구형 센서를 장착하는 방법으로 제품을 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꽃감지기가 초기에 불을 감지하지 못할 경우 주요 문화재 소실은 물론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K사 김모 대표는 “용광로가 있는 제철소 등 현장 상황에 맞게끔 감지기 센서의 감도를 낮추거나 센서를 호환해 사용했을 뿐”이라며 “업계 관행으로 소비자들이 감도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명했다. 반면 KFI 관계자는 “성능시험 기준에 따라 제작·판매해야 하는 건 권고사항이 아니라 강제사항”이라며 “감도를 마음대로 조작하면 화재예방 능력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채승기·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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