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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피서지에서 생긴 일1'

중앙일보 2014.08.06 00:34 종합 31면 지면보기
언제부터였나. 핸드캐리를 끌며 비행기 좌석 번호를 찾아 헤맬 때마다 내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댄다. 냉수 한 잔 마시니 좀 가라앉았다.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샌프란시스코 갈 때에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까지. 연이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노래들.



해마다 여름이면 난 두 딸이랑 두 사위를 만나러 샌프란시스코로 피서를 간다. 그 애들 대학 시절부터 그곳은 늘 내 여름 피서지. 그런데 큰아이 대학 졸업하던 해부터 3년 동안 난 미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영주권을 반납하고 나서 몇 달 후. 비자 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다.



 인터뷰 당일. 물론 합격일 줄 알았다. 자기 나라에서 살기 싫다고, 살지 않겠다고 영주권을 반납한 사람이 비자를 새로 받아 불법체류 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곳에서 산 세월이 세월인 만큼, 세련되게 영어로 인사까지 하면서 웃는 얼굴로 ‘딸 보러 간다’ 했다. 인터뷰 담당자는 추가 질문도 하지 않고선 비자를 줄 수 없단다. 정색을 하고 ‘이유가 뭐냐’ 물었다.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영주권 반납하고 다시 비자 얻어서 불법으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서란다. ‘그럴 거면 왜 영주권을 반납했겠느냐’ 조목조목 따지는데 ‘next’하며 소리친다. 얼른 비키란다.



 결국 난 두 딸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사방팔방 알아봤더니 한 번 거절되면 삼 년은 자숙하고 있어야 한다나. 괘씸죄인 것 같단다.



3년 뒤 다시 인터뷰 당일. 얌전한 옷차림에 다소곳한 얼굴. 입까지 굳게 다물고는 통역까지 부탁했다. 몇 마디 묻지도 않고 합격이란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중엔 소리 내어 울었다. 인터뷰했던 여자가 통역에게 ‘쟤 왜 우느냐’ 묻는다. 통역이 ‘비자 받아 너무 기뻐서 운다 했다’. 아니다. 치사하고 원통하고 억울해서 울었다. 불법체류 확률 0%. 괘씸죄? 괘씸해야 할 사람은 그들 아닌 바로 나였다.



 어느덧 비행기는 착륙하고 가슴 떨리는 입국심사 줄에 섰다. 심장이 또 요동친다. 법을 어긴 것도,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애들 못 만나게 하면 어쩌나. 무뚝뚝한 표정과 말투에다 턱까지 치켜들고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까딱대는 무례한, 그들 행동을 보며 내 가슴은 계속 콩닥콩닥. 행여 우리도 제3국 시민들 입국심사 하면서 저런 얼굴 저런 말투 저런 무례함으로 그들 가슴을 ‘쫄게’ 하지는 않나 걱정된다. 자동문 너머 날 찾아 기웃대는 예쁜 딸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오길 잘했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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