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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중앙일보 2014.08.05 19:54
유경근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게 먼저 간 아이들의 명령"이라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는 것이 우리를 도와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사진 강정현 기자]



특별법 진전 없으면 자체 진상조사 결과 공개해 국민 판단 구하겠다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라는 게 먼저 간 아이들 명령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희생자 가족 대표들이 국회와 광화문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지 오늘로 24일째. 그러나 여야의 대치와 공방 속에 국정조사도, 특별법도 표류하고 있다. 특히 7ㆍ30 재보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세월호는 정치권의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는 분위기다. 여당은 의지가 없고, 야당은 힘이 없다. 이를 지켜보는 유가족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국회 단식농성에 참여한 세월호 사고 희생자ㆍ실종자ㆍ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의 유경근(45) 대변인을 만나 유가족들의 고민과 생각을 들었다. 인터뷰는 3일 중앙일보 유민라운지에서 진행됐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서천ㆍ보령)으로부터 “노숙자 같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가 봐도 내 꼴이 노숙자 같다.”



-서운하지 않은가.

“새누리당 전체 의견이라고 보진 않는다. 우리가 왜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은 좀 아쉽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됐다면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20일 넘게 단식했으면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것 아닌가.

“어제 법륜스님이 다녀갔는데 물과 소금만으로도 인간이 60일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하더라. 대신 흥분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수양 삼아 하라고 하더라.”



-과연 이 방법밖에 없나 하는 생각은 안 해봤나.

“물론 많이 했다. 보통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것이 단식이다. 어설프게 하면 효과도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국정조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국회의원들이 우리와 직접 만나 했던 얘기가 있다. 특히 여당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이것은 여야가 따로 없는 문제다, 정쟁(政爭)의 대상이 아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니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누차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러나 막상 국정조사에 들어가고, 특별법 논의가 시작되면서 보니까 국회의원들이 했던 말과 실제 행동 사이에 너무 차이가 컸다. 그래서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우리가 강조했던 것은 국회의원들과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달라는 거였다. 여당과 야당, 피해자 대표로 구성된 3차협의체를 제안한 취지가 그것이다. 350만명의 서명을 받아 특별법 제정을 청원한만큼 우리는 그 법안이 국회의원들 테이블에 여당 및 야당안과 나란히 올려져 논의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 자리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결정이 되면 우리는 따를 것이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 3자협의체를 제안했는데 거부당했다. 발언도 하지 않고 단지 뒤에 앉아 참관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이 상태에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 것도 안 되겠다 싶어 단식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 단식을 계속할 생각인가.

“우리도 고민이 깊다. 재보선도 끝났고, 더구나 휴가철이다. 그럼에도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는 단식을 계속할 생각이다. 광화문은 종전대로 하고, 국회는 5명씩 조를 짜 24시간 릴레이 단식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고 첫 날(4월16일) 상황을 말해줄 수 있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차를 몰고 달려갔다. 오후 2시께 진도에 도착해 보니 이미 구조된 몇몇 아이들이 체육관에 와 있었다. 딸 아이(예은ㆍ17)가 안 보여 물어보니 구조된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들어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라. 버스 3대가 들어왔는데 거기에 예은이는 없었다. 그래서 예은이를 마지막으로 본 학생이 있는지 수소문하고 다녔다. 한 친구가 충격으로 거의 말을 못하는데, 그 친구 얘기를 들은 다른 아이가 예은이는 살았을 거라고 전해줬다. 그 친구가 구조돼 나올때 바로 몇 명 뒤에 예은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희망을 가졌다. 예은이가 카톡으로 보낸 메시지에도 지금 구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예은이 바로 앞이나 그 앞에서 끊어진 것이다. 나중에 여러 증언과 동영상을 확인해 본 결과 예은이는 줄을 서서 기다린 게 맞고, 예은이 순서가 됐을 때 갑자기 배가 더 기울어지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걸로 파악됐다.”



-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던 게 사고 직후 구조 지연 상황이었을 것같다. 본격적인 구조가 시작된 게 19일 아니었다.

“19일부터 시작은 했지만 그 날은 창문 깨느라 시간 다 보냈다. 실제로는 20일부터 실종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고 직후 3~4일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시간이었다. 20일 새벽까지 단 한끼도 못 먹었다. 물도 안 마셨다. 잠은 당연히 못 잤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본 적도 없다. 모든 부모가 다 그랬을 것이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가장 큰 이유가 해경이 한 게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 본 부모들이 쫓아다니며 울고불고 난리치고, 심지어 빠져죽겠다며 협박까지 했지만 나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지금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거였다. 나는 매일 배를 타고 사고 현장에 갔다. 바지선에서 밤을 샌 적도 있다.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팽목항에 나와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만 했다.”



-구조를 안 한 게 아니라 못했던 것 아닌가.

“해경이 능력이 안 돼 못 한다면 다른 곳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사고 해역에는 해군의 구조 전문 함정도 와 있었고, 온갖 크레인들이 다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왜 저런 장비와 인력을 안 쓰냐고 계속 따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19일 밤과 20일 새벽 해군 함정이 바지선 쪽으로 다가왔다. 물어보니 구조 작업에 투입된 거라고 했다. 그런데 다가와서 작업을 할 것처럼 하더니 그냥 지나가버렸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왔지만 역시 멈추지 않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왔다갔다 하기만 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이런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반드시 진상이 규명돼야 할 문제다.”



-철저한 진상조사의 핵심 대상은 뭐라고 보나.

“해경을 비롯한 정부의 초기대응, 특히 사고 후 첫 나흘인 16일부터 19일까지가 핵심이라고 본다. 그 부분이 명백하게 밝혀지면 그 전과 후도 같이 밝혀질 것으로 본다.”



-나올 건 사실 다 나온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일부분만 밝혀졌다고 본다. 사고 전날 출항 시점부터 문제다. 여객선 중 유독 세월호만 출항했다. 선원들은 출항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말렸음에도 선장은 출항을 지시했다. 결국 사고가 났지만 선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다 빠져나갔다. 밖에서 누르기만 하면 되는 구조벨도 안 눌렀다. 해경은 현장에 도착했지만 적극적인 구조를 안 했다. 이후 잠수대원들이 물 속에 들어갔다고 했지만 사실은 말뿐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 얽혀 있는 사람이 최소한 수백명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명이라도 올바른 판단을 했다면 이런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우리의 확신이다. 그러니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상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이 명쾌하게 해소돼야 한다고 본다.”



-대책위 구성은.

“위원장과 4명의 부위원장이 있다. 부위원장이 장례지원분과, 진상규명분과, 심리치료분과, 대외협력분과 등 각 분과를 하나씩 맡고 있다. 별도로 총무팀과 대변인, 법률자문팀이 있고, 각 반별 모임이 있다. ”



-유가족이나 실종자 또는 생존자 가족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의견을 취합해 합의점을 도출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5월말까지만 해도 합의가 거의 불가능했다. 지금은 특별한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지금은 유가족들이 지도부의 결정에 잘 따른다는 뜻인가.

“지도부가 결정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 채택하고 있는 방식은 우선 각 분과나 임원진이 필요에 따라 의제를 던진다. 그 안을 10명의 반대표에게 설명하면 반대표가 각반의 부모들과 협의를 한다. 회의를 직접 못하면 카톡이나 밴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 거기서 수렴된 의견을 토대로 회의를 한다. 의견이 엇갈릴 때는 임원단과 반대표가 다시 회의를 해서 의견을 조정한다. 필요하면 다시 한번 반별 모임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좀 걸리지만 좋은 점은 개인적으로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일단 결정이 되면 따른다는 점이다.”



-대변인은 대외적으로 워낙 노출된데다 말 한마디로 여러가지 오해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하고 힘든 자리다. 어떻게 맡게 됐나.

“자원한 건 물론 아니다. 예은이는 사고 일주일만에 137번째로 물에서 나왔다. 장례 치르고 가족들 모임에 나가 보니 난리도 아니었다. 진도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던 분들이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분위기였는데 한마디로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하루에 몇 번씩 회의를 하는데 회의 때마다 구성원이 달랐다. 그 때마다 얘기가 다 다르니 결정되는 것도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전체 가족회의를 해야 한다고 해서 모이면 이전 일주일동안 했던 얘기가 다 뒤집어진다. 너무 답답해 집으로 돌아갔는데 거기서도 예은이 생각 때문에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바쁘게, 정신없이 살기로 마음먹었다. 안 그러면 내가 못견디겠더라. 그래서 다시 모임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허드렛일도 하고 그랬다. 그러던 중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위원장 하는 분이 나보고 ‘예은이 아빠, 대변인 하면 딱 좋겠다’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맡게 된 것이다. 맡고 보니 이걸 왜 했나 싶은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해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대변인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가족들의 생각을 왜곡없이,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또 우리 가족들과 대책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점도 어려웠다. 지금도 어렵지만 처음엔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옆에서 도와주는 다른 민간단체는.

“실질적으로 우리의 공식 파트너는 딱 둘로 정리가 돼 있다. 세월호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다. 다른 쪽은 가급적 그 쪽을 통해서 하도록 정리했다.”



-재야 단체들은 없나.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재야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쪽에 600여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 쪽에서 지원 의사를 밝혔을 때 우리가 요구한 조건은 딱 하나였다. 어떤 경우에도 반정부적인 구호나 내용을 앞세우지 않는다는 거였다.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조건을 받아들인 단체들만 참여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촛불모임 등 집회에 참가하는 개인들까지 다 이 조건을 따를 것으로 기대하긴 어려운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범국민대책위가 주관하는 집회에 안 나가기도 했다.”



-재보선 결과에 대한 유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실망이 클 것 같은데.

“그렇다. 우리가 야당을 좋아하거나 지지해서가 아니다. 그동안 진행 과정을 봤을 때 야당의 힘이 커져야 특별법 통과에 유리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실망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좌절하진 않는다. 선거 전에 우리끼리 많이 했던 얘기지만 이번 선거는 보나마나 여당의 승리일 것으로 우리는 예상을 했다.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너무 못했기 때문에 여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 판세로 봤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듯이 우리 길을 꿋꿋하게 가자, 어차피 길게 가는 일이라고 서로 생각하고 있으니 길게 보고 쉴 때는 쉬고, 서로 격려할 때는 격려하고, 힘을 쏟을 때는 확 쏟으면서 길게 가자고 했다. 지금은 유가족들이 다 그렇게 마음 먹고 있다.”



-재보선 결과에 대해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야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분석도 있는데 동의하나.

“일부 동의한다. 분명히 그렇게 비칠만한 내용들이 있었다. 특히 대통령이나 대통령 비서실장과 관련한 부분들이 그랬다. 국정조사에서 기관보고를 할 때도 그랬고, 증인 채택 문제에서도 그 쪽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였다. 수사권과 기소권 때문에 부딪히고 있는 특별법 문제도 대외적으로 그렇게 비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본다.”



-여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국민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세월호 피로감을 반영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세월호 사건 자체에 대한 피로감이라기보다 이걸 갖고 여야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는 그 과정이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새누리당은 피해자지원특별위원회 구성했다. 1 대 1 개별면담을 통해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나.

“어찌 됐든 만나서 얘기하겠다니 반갑다. 문제는 방식과 내용이다. 면담 내용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관련된 의견 청취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원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죄송한 표현이지만 우리를 능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야당이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공격했지만 여당도 이용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선거 전에는 마치 우리를 특혜를 요구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더니 지금은 지원해주겠다고 나서니 어이가 없다. 유가족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보기 때문에 개별면담에 응할 가족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애초 대책위가 제출한 특별법안에는 보상ㆍ배상 등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지원 조항이 안 들어 있나.

“딱 한가지 원칙만 들어가 있다. 변협이 이것만큼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길래 논쟁 끝에 결국 들어간 것이 ‘배상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다른 건 없다.”



-의사상자 지정이나 대입특례 얘기는 없나.

“전혀 없다.”



-그런데 의사상자 지정 논란은 왜 나왔나.

“우리가 먼저 요구한 적이 없다. 야당 의원이 우리한테 찾아와 뭘 도울 수 있는지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의사상자란 표현이 들어가 있었다.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서 의사상자로 적어놨는데 기존 법률에 규정된 의사상자를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용어를 같은 걸 쓰다 보니 오해가 생긴 것이다.”



-성금 논란도 있었는데.

“5월 중순쯤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나왔던 얘기를 정리하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성금에 관한 것이었다. 5월 하순경 기자회견을 해서 아예 성금모금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워낙 말이 말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억울해서 못살겠다’며 펑펑 울었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사람들이 ‘성금도 많이 모인다는데 애가 효도했네’ 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금 모금 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대입특례 혜택은.

“이 문제도 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문제가 됐다. 이 역시 뜻은 고마운데 아닌것 같다고 했다. 최소한 특별법이 통과된 다음에 하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으니 폐기하거나 중단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세월호 국정조사와 특별법 협상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정치권에 대해 느낀 소감은.

“여야를 떠나 과연 국회가 정말 대한민국 국민의 대변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국회는 대의정치의 핵심이고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가 국회가 대의정치의 주역인 민주주의 국가 맞나 하는 회의가 많았다. 유가족도 국민인데 오히려 국회의원들이 보호하려는 다른 곳이 있는 것같은 생각이 들 게 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줬다.”



-주로 여당에 해당하는 모습 아닌가.

“굳이 구분한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번도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을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도 한 적이 없다. 단지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원칙만 얘기했을 뿐이다. 너무 이상적인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그 원칙에 비추어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나도 조사해라’고 했다면 얼마나 보기 좋았겠는가. 우리는 대통령을 공격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우리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지금의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세월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초석을 놓는 정부가 됐으면 정말 좋겠다는 것이다.”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사고 첫 날 대통령이 뭘 했길래 그런 한심한 사태가 현장에서 벌어지는 것을 청와대가 방치했느냐는 부분에 대한 조사가 안 이뤄질 수 없는 것 아닌가.

“청와대에는 대통령만 있는 게 아니다. 비서실도 있고, 국가안보실도 있다. 대통령이 자리를 비웠거나 다른 일 때문에 신경을 못 썼더라도 청와대가 제대로 돌아갔다면 대통령의 행적을 우리가 궁금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게 안됐다는 것이다. 국정조사 때 기관보고 들으며 제일 답답하고 한심했던 게 김기춘 비서실장이 오전 9시24분 YTN 보고 사고를 처음 알았고, 국정원도 그 시간에 YTN 보고 알았다는 거였다. 어떻게 청와대와 국정원이 방송을 보고 알 수 있단 말인가.”



-정부와 여당은 재보선 결과를 세월호 국면에서 벗어나라는 국민의 뜻으로 해석하고 싶은 눈치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더 위험해진다. 특별법을 통한 진상규명에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축적한 내용과 자료를 공개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공개를 자제한 이유는 피해자 입장에서 공개를 하면 사회적 공신력이나 객관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런 식으로 굳어진다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을 국민과 공유한 뒤 특별법이 필요한지 판단해달라고 할 것이다.”



-세월호 국정조사 청문회가 김기춘 비서실장, 정호성 부속실장,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 증인 채택 문제로 무산됐는데 이 세 사람의 증인 채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나.

“그렇다. 이 세 명의 출석이 꼭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선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검찰 수사를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 특별법을 제정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검찰 수사에 대해 우리가 언급한 적이 없다. 비판한 적도 없다. 나름의 원칙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실종자 수색이 안 끝났기 때문에 해경에 대한 수사보다는 선사와 선원들 및 그 배후에 대한 수사에 주력하는 게 당연하다. 검찰은 그 순서에 따라 하고 있다. 그럼에도 특별법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과거 전례를 봤을 때 권력기관이나 정부가 관여된 사건을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 명명백백하게 의혹을 밝힌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검찰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보완관계라고 보는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여전히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여당의 주장대로 초법적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법질서 내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수많은 법학자들이 이미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제출한 특별법안은 우리 마음대로 만든 게 아니고, 대한변협의 1000명 변호사들의 의견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변협에서 만든 법안이 대한민국 법체계를 흔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당은 조사권만 부여한다는 입장이다. 그것도 동행명령권은 빼고 자료제출요구권만 준다는 것이다. 국회의 세월호 국정조사특위는 동행명령권까지 갖고 있다. 더구나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18명이 진행한다. 그런데도 거기서 새롭게 밝혀진 게 없다. 진상조사위원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민간인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료제출요구권만 갖고는 일이 안된다. 동행명령권까지 가져도 어렵다. 진상조사는 누구를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진상이 규명되면 그에 따라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대한민국을 안전한 나라로 만들자는 게 목적이다. 이 목적을 이루려면 최소한 수사권까지는 보장이 돼야 한다.”



-대책위가 제출한 특별법안에는 진상조사위 구성이 어떻게 돼 있나.

“국회 즉 여야가 각각 4명씩 8명을 추천하고, 유가족이 8명을 추천하는 걸로 돼 있다.”



-그렇다 보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우려는 이해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번 참사의 내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피해자 가족들이다. 유가족들만큼 이 사건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진상규명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세월호 선체 인양에 대한 대책위의 공식입장은.

“어떤 것보다도 말하기 조심스럽다. 시간상으로 보면 사실은 이미 인양이 됐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도 인양은 상당히 중요하다. 선체에 여러가지 증거들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인양이 받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선 하루라도 빨리 선체를 인양하는 게 좋다. 그러나 아직 잠수사들이 안 들어가 본 격실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는 절대 없다고 확언했던 곳에서 시신들이 또 나왔다는 점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도 인양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인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귀하는 정의당 당원이다.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하는 글을 올린 적도 있다. 우가족을 대표해 활동하는 의도의 순수성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던데.

“지금은 정의당 당원이 아니다. 스스로 탈당했다. 정의당 당원이었던 건 맞지만 당직을 맡았던 것도 아니고, 당원으로 활동했던 것도 아니다. 매달 1만원씩 당비를 낸 게 전부다. 그게 문제가 됐다면 지금까지 내가 대변인을 할 수 있었을까. 가족들의 반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부분을 갖고 문제 삼은 유가족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대변인 활동을 객관적으로 잘 하고 있으니 계속 잘해 달라는 격려는 받았다.”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예은이가 4월 16일 바다에 빠진 순간 그동안 살아오고 생각해온 것 모든 것이 정지돼 버렸다. 그 날 이후부터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오로지 예은이가 왜 죽었는지, 또 예은이 친구들이 왜 그렇게 떼죽음을 당했는지, 그 진상을 규명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뿐이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세월호 대책위의 활동을 ‘시체장사’니 뭐니 하며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에는 있다.

“전국민의 100%가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고 아파한다고 본다.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이고, 같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 대한 일부 왜곡된 주장이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목적이 뭘까.

“진상규명이 명백하게 되면 될수록 그로 인해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사고 발생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과 결탁돼 있고 그들로부터 후원과 혜택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이게 혹시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늘나라에 있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부모 노릇 한 번 제대로 하라고 내린 명령만 보고 우리는 가고 있다.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것이 아이들 명령이다. 그 명령을 우리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못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국민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이다. 국민과 함께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을 열고 싶다. 하늘에 있는 아이들도 지금 손잡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논설위원ㆍ순회특파원





유경근 대변인은



1969년 서울생. 88년 우신고 졸업. 94년 연세대 신학과 졸업. 98년 주신화학 입사. 2004년 주신산업(주) 상무이사. 2012년~ 주신산업(주) 대표이사



인터뷰 후기



그는 20일 넘게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을 했다. 물과 소금만 먹고 버텼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서천ㆍ보령)은 그를 가리켜 “노숙자 같다”고 했다. “내가 봐도 내 꼴이 노숙자 같다”며 그는 웃었다.



태풍 나크리가 북상하던 날 아침, 기자는 그를 기다리며 걱정을 했다. 제대로 올 수 있을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내가 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약속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나타났고, 내 예상은 빗나갔다. 발걸음과 자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언어 구사는 명료하고 정확했다.



단식농성 중에도 그는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일을 계속했다. 전화 인터뷰 요청에 웅하고,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현장을 찾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네 딸의 아빠인 그는 세월호 참사로 쌍둥이 자매 중 둘째를 잃었다. 둘의 성격과 취향을 고려해 각기 다른 학교에 보낸 것이 다행이면서 불행이다. 자동차용 에어벡과 안전벨트 부품을 만드는 직원 25명의 중소기업 사장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으로 변신한 그는 희생자 가족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묶는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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