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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가 맛난이 … 어깨 펴는 B급 농산물

중앙일보 2014.08.05 01:27 종합 18면 지면보기



일반 상품보다 10~60% 저렴 … 불경기 길어지며 소비 늘어
인터넷몰마다 전담 코너 과일 위주서 채소류로 확대



















지난해 11월 서울 서교동 홍대 앞 거리에서 대규모 카레 만들어 먹기 행사가 열렸다. 상품가치가 없는 감자를 사용해 요리를 만들고, 이를 시민들과 나눠먹는 자리였다. 크기가 작거나 생산·유통 과정에서 흠집이 생긴 탓에 시장에서 외면받은 ‘B급 감자’도 훌륭한 음식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시도다. 행사 이름도 ‘버려질 뻔한 못난이 감자 구출하기’였다. 이처럼 ‘못난이·B급 농수산물’은 소수 집단의 소비 캠페인 대상에 머물러왔다. 그런데 최근엔 불경기가 길어지면서 이들 품목이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B급 농산물 전문 인터넷 쇼핑몰의 이용자가 급증하고, 기존 쇼핑몰에서도 못난이 과일·채소 판매량이 늘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11번가는 ‘못난이 과채류’를 별도 상품군으로 묶어 팔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파는 못난이 감자는 개당 무게가 100g 안팎으로, 일반적으로 팔리는 것(150~200g)보다 작고 흠집이 있거나 모양이 불규칙하다. 하지만 가격은 ㎏당 1097원으로, 일반 상품(2055원)의 절반가량이다. 주스용 토마토와 당근도 인기 상품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못난이 과채류가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6월 한 달간 판매액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46% 늘었다”고 전했다.



 ‘옥션’도 ‘못난이 과일’ 코너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업계에선 옥션의 못난이 과일 판매액이 지난해보다 20%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떠리몰’은 초기 회원이 9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못난이 농산물도 일반 상품처럼 안전하고 맛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회원수가 6월 말 37만890명으로 급증했다. 농협 인터넷 쇼핑몰인 a마켓에서도 참외·당근·산마·고구마 등의 못난이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못난이 참외는 a마켓에서 1㎏에 3725원으로, 같은 친환경 참외(4500원)보다 17.8% 싸다. 친환경 제품과 못난이 농산물 전문 쇼핑몰로 지난해 문을 연 ‘파머스 페이스’는 올해 매출 3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삼섭 농협경제연구소 컨설팅실장은 “민간 소비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실속 상품을 찾는 트렌드가 퍼지고 있다”며 “기존엔 과일류에 한정됐던 B급 품목의 인기가 토마토·참외·오이·파프리카 등 채소류로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도 못난이 상품에 대한 소비자 태도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세 이상 소비자 1000명에게 물어보니 72.2%가 ‘B급 상품 구매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B급 상품이 실제 시중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응답자도 81.7%에 이른다. 농가에서 자체 소비하거나, 버려지던 못난이 농산물이 이제는 독립된 상품군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생산·유통업자들의 판매 노력도 이 같은 변화에 영향을 줬다. 여름철 태풍 피해로 품질 가치가 떨어진 사과에 ‘합격 사과’라는 이름을 붙여 수험생 선물용으로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태풍을 견뎌내 열매로 맺어진 사과를 먹고 시험에도 합격하라는 의미를 담아 인기를 끌었다. 쓸모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10g 정도의 작은 전복도 ‘라면용 전복’으로 알려지면서 하나의 상품이 됐다.



 이삼섭 실장은 “B급 농산물은 물량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기가 올라간다고 해도 일반 농산물 시장을 잠식할 정도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환경 보호와 농가 소득 확대에 B급 농산물이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판매량, 주요 소비 지역 통계와 같은 기본 자료들이 갖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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