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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교황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2014.08.05 00:10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잔혹했다. 수백 명이 참수된 뒤 약 5000명의 천주교도는 깊숙한 산골에 틀어박혔다. 요즘 성지(聖地)로 지정된 그곳을 사람들은 교우촌으로 불렀다. 신도들의 삶은 궁핍했다. 교우촌 신자들은 서양 신부들이 보화를 싣고 와서 구해주기를 기도했다. 1824년 동지사 일행에 역관으로 참여했던 유진길은 북경 구베아 신부에게 조선의 박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곤 돌아와 로마교황청에 편지를 썼다. 황사영 백서가 발각된 지 25년 만의 일이다. “우선 신부들을 보내어 저희들의 긴박한 사정을 돌보게 하시고 우리가 배를 맞아들이게 하소서…. 서양배가 나타나면 조정은 탄압을 거둘 것입니다”라고. 이른바 대박(大舶) 청원서였다. 이듬해 이 대박 청원서는 교황청에 전달되었다. 교황청에 접수된 조선발(發) 최초의 편지였다.



 14일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각별히 사랑하는 데는 이런 역사적 사정이 깔려 있다. 기독교 탄압이 조선 못지않았던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신자가 신도(神道)로 돌아선 반면, 서양 신부 12명이 참수되고도 신자 수가 날로 증가했던 조선을 교황청은 성령이 그윽한 땅으로 바라봤다. 박해의 땅, 그러나 기적의 땅이었다. 그곳에 교황이 온다. 대포와 정병(精兵)이 아니라 주교 90명을 대동하고 말이다. 유진길의 청원서에 대한 화답치고는 벅차기 이를 데 없는 교황의 행차가 한반도에 전할 메시지는 소박한 것일 게다. 가난한 자의 벗이자 타 종교와 화통한 교황의 답서에는 생명존엄과 인간사랑, 이 두 단어가 씌어 있다.



 평범한 이 두 단어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적 실천과 접합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차동엽 신부는 저서 『따봉, 프란치스코!』에서 교황의 사랑혁명을 ‘관상적(觀想的) 사랑’으로 개념화했다. 인간을 하느님 대하듯 하면 그 사람 안에 숨겨진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이다(중앙일보 7월 31일자). 그러니 마약중독자의 발에 입 맞추고 행려병자를 품에 안는다.



 동학의 전도사 해월(海月) 최시형이 그랬다. 스승 최제우가 ‘사람은 하늘’이라는 계시로 대각했다면 최시형은 한울님, 즉 천(天)이 만물에 스며 있다는 범천론(汎天論)으로 나아갔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사물도 천이다’. 사람과 사물을 접할 때 ‘양천주(養天主)’하라는 생활철학으로 전환한 최시형이 ‘어린아이도 한울님이다, 때리지 마라’고 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이천식천(以天食天·하늘이 하늘을 먹는다)이라 설법했으니 동학과 천주교의 인간사랑은 상통한다. 마치 상제(上帝)와 천주(天主)가 조선 교리서에 번갈아 등장하듯 말이다.



 인간 내면에 깃든 천(天)을 섬기고 양육하라는 그 메시지를 힘겹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고(故) 이승현·김웅기군의 아버지다. 웅기군의 아버지는 식당 일을 했다. 음식을 만들면서 아들을 수장한 그들을 죽이고 싶었다. 무뎌지는 칼을 자주 갈았다. 죽이는 방법을 궁리하면서 버텼다. 그러다가 십자가를 지고 걷기로 했다. 웅기군이 죽은 그 바다까지. 지난달 28일 2000리를 걸어 팽목항에 도착했다. 천주의 화답을 들었다. ‘하느님께서 책임을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상적 사랑, 양천주의 깨달음이 스민 십자가는 다시 천리를 걸어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 행선할 교황께 봉헌될 예정이다.



 그것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 가슴에 못이 박힌 국민의 대박 청원서다. 황사영 백서처럼 ‘배 수천 척과 정병 5만, 6만을 보내시어…. 이 지역의 생령을 구하소서’ 같은 의존적 절규가 아니라 슬픈 표정 뒤에 정치적 타산이 어른거리는 국가운영 집단의 위선에 대한 희생적 고발이다. 일정이 예정된 재·보궐선거라 해도 국가혁신과 책임정치를 떳떳이 상기시킬 만큼 어떤 의미 있는 시작이라도 했는지 되묻고 싶은 것이다. 유족들의 청와대 방문, 천막농성, 시민 활동가의 단식투쟁에도 사소한 조항 다툼과 명분 살리기에 집착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견디다 못해 내친 발걸음이었다.



 우리가 모두 천도교도는 아닐지라도 세상살이엔 생명에 대한 성(誠)·경(敬)·신(信) 세 글자뿐이라 믿었던 동학 농민의 후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천주교도는 아닐지라도 가슴에 내려앉는 하느님을 외면하지는 못한다. 상제와 천주가 내려준 생명존엄과 인간사랑의 훈령은 경제성장과 사회통합 같은 현실적 가치에 선행하는 것이고, 사리(私利)에 취약한 영혼과 육신에 공익적 긴장을 점화하는 개안(開眼)이다. 정치란 대체 무엇인가. 시민들이 근본을 잊을 때 망각을 치유하는 샘물 아닌가. 시민들이 근본으로 회항하는 이때 한국의 정치는 오히려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돌아갈 길을 만들어 주었는가. 송구스럽지만 또 하나의 생명존엄 청원서가 방한할 교황을 기다리고 있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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