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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호한다며 완장 찬 '갑' 행세 … 길 잃은 을지로위원회

중앙일보 2014.08.04 02:44 종합 5면 지면보기
2013년 5월, 약자인 ‘을(乙)’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을지로위원회의 을지로는 ‘을을 지키는 길’이란 뜻으로 따왔다.


정치 이슈화엔 성공, 상생엔 실패
남양유업 사원 욕설 사태로 출범
농심·홈플러스 등 분쟁 현장 가서
법적 권한도 없이 기업 자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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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을지로위는 대기업 대 가맹사업자·대리점주의 갈등이 일어난 곳이나 노사 분쟁 현장을 찾아다니며 직접 조사활동을 하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해왔다. 지금 산업현장에선 갑(甲) 중의 갑으로 불린다. 갑이 된 을지로위. 혹시 ‘을지로’에서 길을 잃은 건 아닐까.



 지난해 가을 A기업의 사장실. 을지로위 소속 의원들(당시 민주당)이 들이닥쳤다. 함께 온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의원들은 무조건 “당신들이 잘못했으니까 시정하라” “피해점주에게 보상하라”고 호통쳤다. 사장이 난처해하자 “회장까지 국정감사에 불려나오고 싶으냐”며 목청을 높였다. 결국 사장은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다.



 B기업을 찾았을 땐 예고 없는 방문이라 사장 대신 상무가 응대했다. 그러자 이들은 “다른 회사는 사장이 나왔는데 왜 상무가 나왔느냐”고 따졌다. 한 의원은 “특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도 했다. 특별근로감독은 고용노동부가 한다. 야당 의원의 권한이 아닌데도 특별근로감독을 거론했다.



 을지로위는 남양유업을 시작으로 농심·크라운베이커리·롯데·농협·미니스톱·티브로드·KT·국순당·LG유플러스·아모레퍼시픽·홈플러스·삼성 등의 분쟁현장을 다녔다.



 을지로위가 거쳐간 사업장은 어떻게 됐을까. 대기업과 중소 영세업체·대리점·가맹사업자 등의 불공정한 관계를 이슈화한 공로도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의 문제에 끼어들어 대·중소기업 간, 기업과 대리점 간, 노사 간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고 ▶공정거래 기준을 넘어선 양보를 한쪽에 강요하고 ▶불공정 행위를 조사한다면서 법적 권한도 없이 기업 내부자료 제출을 강요하는 데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오히려 ‘을’의 피해가 커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화장품회사 아모레퍼시픽과 특약점 점주와의 갈등에 개입한 게 대표적이다. 을지로위는 이 회사 임원들을 대거 국정감사에 불러 사과를 받아내긴 했다. 하지만 서금성 특약점협회 대표는 “추운 날 함께 투쟁해줘서 고맙 지만 국감까지가 끝이었다”며 “국감 이후 을지로위원회가 손을 떼자 협상이 더 어려워져서 지금은 중재를 위해 오히려 새누리당 의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을지로위의 요구대로 하다 보면 과도한 부담을 지기 때문에 기업으로선 대리점들과의 거래를 끊고 본사 직영체제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을지로위 설립의 계기가 됐던 남양유업 분쟁도 해결은 요원하다. 을지로위는 “갑의 횡포를 막겠다”며 참여연대와 함께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불리는 대리점법(이종걸 의원 대표발의) 제정안을 발의했다. 공정위가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해결할 수 있다”며 대안을 냈지만 묵살됐다. 해당 법안은 과잉입법 논란을 빚으며 국회에 계류돼 있다.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은 “개별 사안을 개별 입법으로 규제할 경우 사측이 대리점 거래 자체를 줄이고 대형마트 직접 판매를 늘리게 될 것”이라며 “피해 업주는 보상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앞으로 ‘을’의 밥그릇 자체를 줄여 결과적으로 을을 죽이게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환노위 간사를 맡았던 김성태 의원은 “산업현장에선 을지로위원회를 불을 지른 뒤 또 다른 곳으로 불을 지르러 떠나는 ‘화전민’이나 ‘노마드(nomade·유목민)’에 비유한다”고 전했다.



 을지로위의 당내 위상은 크다. 그러나 ‘반(反)기업’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것이나 권한 남용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우려가 적잖다. 익명을 요구한 새정치연합 정책통 의원은 “한쪽을 악으로 규정하고 을을 지킨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며 “입법권을 ‘완장(腕章)’쯤으로 착각하고 입법을 추진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변재일 의원은 “을지로위의 활동도 앞으로는 ‘상생’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을지로위원회=을을 지키는 위원회라는 뜻. 지난해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로 불거진 ‘갑을 논란’ 때 출범했다. 우원식 의원을 위원장으로 해서 현역 의원 30여 명이 소속돼 있는 거대 기구다. 시민·사회·노동단체 출신 의원들이 주축이다.



알려왔습니다 위 기사 중 “아모레퍼시픽 특약점협회 서금성 대표는 (회사·특약점 간 분쟁에 개입했던) 을지로위원회가 손을 떼 협상이 더 어려워져 지금은 중재를 위해 새누리당 의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 부분과 관련해 서 대표는 “을지로위 측에서 새누리당에도 협조를 구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여당 의원을 찾아간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서 대표는 “을지로위가 도와준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여당 도움을 받는 중에도 을지로위 모임에 계속 참석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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