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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월요일] 부산 초량 돼지갈비 골목

중앙일보 2014.08.04 01:48 종합 20면 지면보기

초량 '이바구길'?  초량 돼지갈비 골목을 나와 부산역 맞은편 옛 백제병원으로 가면 산책 코스인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이바구란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란 뜻. 1.5㎞의 골목길에는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故) 장기려 선생, 고 청마 유치환 선생 의 이야기들이 서려 있다.



“♬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미스김도 잘 있어요 미스리도 안녕히/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마는/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부두 등짐꾼들 떠났지만, 왁자한 불판은 남았다



 1960년대 백야성이 부른 옛 노래 ‘잘 있거라 부산항’에선 떠나는 뱃사람이 남은 여인을 향해 읊조린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떠나간 형제를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그렇다고 부산항에 이별의 정서만 있는 건 아니다. 땀냄새 가득한 노동의 역사도 있다. 그 흔적이 음식으로 남아 있다. 마치 부두 노동자의 ‘유적(遺跡)’ 같은 돼지갈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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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항은 세계 5위의 물동량을 자랑하는 국제항이지만 의외로 조용하다. 길이 6m짜리 컨테이너를 1만 개(TEU)나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의 하역을 자동화된 크레인들이 소리 없이 해내기 때문이다.



 부산항이 시끌벅적했을 때는 한국전쟁 직후였다. 50~60년대 미국의 군수물자와 원조물품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다. 부산항은 수많은 부두 노동자들이 주야 교대로 근무하며 등짐으로 화물을 내렸다. 그들은 주로 부산항 1~4부두 맞은편 산동네인 동구 초량2동 일대 주택가에 살았다.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먼지투성이 부두 노동자들은 돼지고기 안주에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 피로를 풀었다. 쇠고기를 먹고 싶지만 비싸다 보니 돼지고기를 찾은 것이다. 부두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목에는 자연스레 돼지고기 식당들이 생겼다. 처음엔 돼지국밥과 수육을 팔았다. 부두 노동자들이 “맨날 돼지고기 국밥인교, 뭐 딴 것 없소”라며 다른 메뉴를 찾으면서 돼지갈비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시철도 1호선 초량역 1, 3번 출구를 나오면 ‘초량 돼지갈비 골목’이라는 안내간판이 서 있다. 여기에서부터 돼지요리 식당들이 즐비하다. 돼지갈비 골목은 여기서 초량 오거리 쪽으로 200m쯤 올라간 골목 안에 있다.



 60년대 후반 돼지갈비를 굽는 남해집, 울산집 등 3곳이 처음으로 생겼다. 이후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돼지갈비 집들은 길이 250m 골목에 한때 38곳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벌크 화물이 컨테이너 화물로 바뀐 데다 새로 생긴 부산 신항으로 물동량이 넘어가면서 부두 노동자들이 신항으로 옮겨간 탓이다. 요즈음은 부두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젊은이들과 가족 단위 외식족들이 차지하고 있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나 등장할 만한 스산한 골목 같지만 저녁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진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40여 년 전에 시어머니가 시작한 돼지갈비 집을 물려받은 남해집 주인 이영도(53·여)씨는 초량 돼지갈비 골목의 역사를 꿰뚫고 있다.



 “시아버지가 부두 노동자였어요. 시아버지가 힘든 부두일을 그만두시고 퇴직금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68년께 돼지갈비 식당을 차렸어요. 먼지를 많이 마시고 땀을 많이 흘리는 부두 노동자들에게는 돼지고기가 좋다는 것을 아시는 시아버지가 돼지갈비로 정했죠.”



 당시 부두 노동자들은 가게마다 외상장부를 두고 외상거래를 했지만 한 푼도 떼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산항의 경기가 그만큼 좋았다는 방증이다.



 60년대는 드럼통 연탄화로를 썼다. 지금은 연탄불이 가스불로 바뀌었을 뿐 쇠 구이판은 그대로고 나머지 조리법도 똑같다.



 이곳 돼지갈비는 근육질이 적은 앞다리쪽 생고기만 쓴다. 가격도 앞다리쪽 갈비가 더 비싸단다. 고기는 경남 김해 도축장에서 통째로 가져온 뒤 주인이 직접 다듬는다.





 갈비에 붙은 살집을 왼손으로 잡고 칼로 얇게 자르는 모습은 한마디로 달인을 떠올리게 한다. 얇은 살코기 사이에 맛난 지방 부위는 그대로 살려둬야 식감을 좋게 한다고 한다.



 식당마다 돼지갈비를 다듬는 통나무 도마들이 있다. 오랫동안 영업하다 보니 높이 1m쯤 되는 통나무 도마가 닳으면서 몇 개씩 갈아치운 집들이 수두룩하다. 밀양갈비 주인 김홍련(58·여)씨는 “대부분 여주인들인데 직접 고기를 다듬다 보니 어깨와 팔에 파스를 붙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손가락 관절염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초량 돼지갈비 골목 상인회 박덕여(53·여) 회장은 “주인들이 직접 고기를 만지니 외국산이나 나쁜 부위가 섞일 수 없고, 많이 팔리니 유통기간이 짧아 고기가 신선하다”고 말했다. 초량 돼지갈비는 양념을 한 뒤 하루이틀 숙성시켜 내놓는다. 양념에는 한약재나 향신료를 쓰지 않는다. 고기의 원래 맛을 죽일까봐서다. 돼지갈비를 싸 먹는 김치도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백김치다. 고기 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가족과 함께 온 배규한(33·부산시 남구 대연동)씨는 “어릴 때 초량동에 살면서 친구 생일, 졸업식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돼지갈비를 먹으러 왔었다”며 “지금은 이사 갔지만 어릴 적 추억을 잊지 못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돼지갈비 골목의 1인분 가격은 7000원(180g). 70년대 돼지갈비 1인분이 3000원 할 때 삼계탕 한 그릇은 2500원이었다. 삼계탕 가격이 지금 1만2000원까지 오른 점을 감안하면 이곳 돼지갈비는 아직도 ‘착한 가격’이다.



 이 골목에서 규모가 가장 큰 은하갈비는 73년 33㎡(10평)로 시작해 지금은 82㎡(25평)로 커졌다. 이 집은 일본 NHK 방송과 일본 잡지에도 소개되면서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주인 정재구(77)씨는 “택배 주문도 많다. 우리 집은 평일에는 2마리, 주말에는 5~6마리 돼지를 잡는다”고 말했다.



 부산항의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부산항만공사는 부산항~초량 돼지갈비 골목∼산복도로 주택가까지 2㎞를 ‘부두 노동자의 길’로 가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길을 제안한 한영숙(39) 사이트 플래닝 대표는 “초량 돼지갈비는 항구도시 부산의 역사를 품고 있는 음식이다. 손님이 바뀌는 과정을 되새겨 본다면 역사공부도 덤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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