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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①

중앙일보 2014.08.04 01:29 종합 23면 지면보기
제14회 미당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을 릴레이로 소개한다. 8월 한 달간 시인·소설가 20명의 작품을 10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미당·황순원문학상은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와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앙일보가 2001년 제정한 상이다. 최근 1년간 선보인 최고의 시 한 편과 단편소설 한 편씩을 뽑게 된다. 본심 후보작을 ‘올해의 명작 열전’으로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최종 결과는 중앙일보 창간기념일인 9월 22일 무렵 발표된다.



김이듬 시인은 시작(詩作)을 천지창조에 비유했다. “창조주의 감동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악다구니처럼 싸운 자리

뭉근한 시선이 들어서다



시 - 김이듬 ‘데드볼’ 외 19편




문단 안팎에서 시인 김이듬(45)을 논할 때 주로 썼던 단어는 다음과 같다. ‘퇴폐적’ ‘난해한’ ‘과감한’…. 그의 시는 대중은커녕 평단도 선뜻 호의를 표하기 힘든 ‘별종’이었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배우거나 스승에게 가르침을 얻어 시를 쓰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만난 김이듬(45) 시인은 “친절한 시가 아니다. 처음엔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난 중심부에 있기보다 밀쳐놓은 사물, 버려진 존재에 눈이 간다”며 “어디를 가도 중간에 다정히 모인 사람들보다 끼지도 못한 당황스러운 사람에게 관심이 간다”고 했다. 지독한 변방의 감수성이다.



 하지만 최근엔 김이듬에 대한 평가가 사뭇 달라졌다. 2012년에 이어 다시 미당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요즘들어 물이 올랐다”(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는 평처럼 심사위원들은 그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듯했다. 장석남 시인은 “근래 시에서 존재의 뿌리를 파고드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다. 독특한 개성이 자리를 잡았다”고 평했다.



 김이듬은 “시가 시인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그는 “예전의 난 잘 울고 싸우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말리는 쪽”이라며 “시를 쓰다 보면, 관찰하다 보면 사랑하지 못할 대상이 없더라”고 했다.



 김이듬은 서른 즈음에 쓴 시를 묶어 2005년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을 냈다. ‘막힌 주둥이의 하수구로 오줌과 정액이 역류하는 대로 다 삼켜’(‘욕조들’ 중에서)처럼 섬뜩한 상상력이 펄펄 날뛴다.



 그리고 10여년. 한바탕 악다구니가 물러난 자리에 뭉근한 시선이 들어섰다. ‘벚꽃나무 아래 사과 파는 노파/죽은 듯 쪼그려 앉아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락 말락/내려놓으면 될 것을/허망한 간극’(‘아우라보다 아오리’ 중에서) 같은 문장에서다.



 지난해 여름에 발표된 탓에 지난해 가을 발표작부터 포함하는 미당문학상 후보작에 아쉽게 들진 못했지만, ‘시골 창녀’는 지난해 문단에서 화제가 됐다. 올 1월엔 웹진 ‘시인광장’이 뽑은 ‘올해의 좋은 시’에 선정됐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의 풍경을 연을 바꾸어가며 리듬이 달라지는 ‘드라마’ 속에서 극적으로 펼쳐내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요즘은 추악한 것을 볼 때 어떻게 추악해졌는지 그 연유를 먼저 생각한다”며 “그러다보니 시쓰기가 일종의 수행이나 참선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시와 노는 존재로 있고 싶은데. 늙었나 봐, 큰일이야. 모든 게 용서가 돼”라며 웃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이듬=1969년 경남 진주 출생. 2001년 계간 『포에지』로 등단.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출간예정).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등.





소설가 기준영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반짝거리는 삶의 순간을 계속 주목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여년 만에 만난 옛사랑

뭘까, 이 낯설기만한 감정



소설 - 기준영 ‘이상한 정열’




소설가 기준영(42)은 이른바 늦깎이 등단을 했다. 서른여덟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서다. 대학에서 소설가 수업을 받았지만(문예창작 전공), 졸업 후 정작 그가 달려간 곳은 영화판이었다. 한예종에서 2년간 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한 후 충무로영화제, 임권택 감독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메이킹필름(영화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 등에 관여했다. “잘 모르는 새로운 분야여서 도전해보고 싶었다”는 게 영화에 눈을 돌린 데에 대한 그의 변(辯)이다.



 그런 이력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이력을 의식한 채 읽어서인지, 기씨의 소설에서는 영화적인 특징이 느껴진다. 사건의 서술이 시간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뒤섞여 있거나, 선명한 그림이 떠오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한편 등장인물의 내적 변화는 희미하게 처리된다. 소설 말미의 반전(反轉)까지 읽은 후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희미했던 인물 내면의 진실이 또렷해지는 식이다. 영화로 치면 잔잔한 멜로, 소설의 특징을 논하자면 영화판 경험을 영리하게 활용해 다채로움을 더한 ‘낯선 소설’이다.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이상한 정열’도 작품의 메시지에 대해 섣불리 결론내리지 않는 게 좋겠다. 표면적으로는 사랑 얘기로 읽힌다. 하지만 제목대로 남자 주인공 무헌이 20여년 만에 만난 옛사랑 말희에 대해 품는 열정 혹은 정열의 감정은, 단순히 이성간의 사랑이라고 치부하기엔 ‘이상하고’ 복합적인 것이다.



 기씨는 읽는 데 30분쯤 걸리는 단편 안에 무헌과 말희의 20년 넘는 인생역정을 압축적으로 풀어 놓는다. 오십 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무헌은 서른 살 시절, 스물일곱 말희를 끔찍히 좋아했다. 말희는 종종 무헌과 자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무헌이 “지켜줄게”라며 키스 이후의 진도를 나가지 않아, 불타 올랐다가 얼음창고에 갇히는 인형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무헌은 심지어 말희와 헤어진 후 결혼해 나은 딸 현서를 여섯 살 때까지 별님으로 불렀다. 별님은 교제 시절 무헌이 말희를 부르던 애칭이었다.



 중년이 된 무헌과 말희의 삶은 그야말로 지리멸렬이다. 무헌은 이혼했고, 회사에서는 위태롭다. 탈모는 속수무책으로 진행중이고, 딸은 속깨나 썩인다. 말희는 통 넓은 청바지를 입는 배 나온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아 파출부로 일한다. 그나마 봐줄만 한 게 각선미일 뿐 손마디 주름은 굵고 피부는 거칠다. 둘은 연애 시절 못해본 잠자리를 처음으로 갖지만 서투른 무헌은 성급했고 낙담한다. 말희는 무헌에게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며 종교를 가져볼 것을 권한다.



 어쨌거나 소설은 무헌이 말희를 만난 후 이상한 정열에 휩싸인다는 게 핵심 설정이다. 그러니 그 정열의 성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가 작품 을 제대로 감상하는 맥이다.



 기씨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인생의 사소하지만 반짝거리는 순간들, 그 순간을 소설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헌이 그리워하고, 말희와의 재회를 통해 되살리고 싶었던 ‘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일 것이다. 다만 그 순간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여전히 괄호 속이다. 그 괄호 안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읽는 이는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될 것 같다. 계간 창비 2013년 가을호에 실렸던 작품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준영=1972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과정 졸업. 2009년 단편 ‘제니’로 등단. 2011년 장편 『와일드 펀치』로 창비장편소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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