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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부자들 펑펑 쓰게 만들자

중앙일보 2014.08.04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고현곤
편집국장 대리
최경환 경제팀이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책이 망라됐다. 유보금 과세, 부양책 후유증 등 일부 논란이 있지만, 중앙은행을 동원해 돈을 찍어낸 선진국에 비하면 점잖은 편이다. 정부가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뭔가 해보려고 애쓰는 점만으로도 높게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논의에서 빠진 게 있다. 부자들의 지갑을 어떻게 여느냐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57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1135조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소비가 늘지 않고는 경기회복이 어렵다는 얘기다.



 상황은 좋지 않다. 세월호 참사가 겹쳐 2분기 소비는 0.3% 줄었다. 소비자신뢰지수(닐슨 2분기 조사)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도 소비할 여력이 없다. 집집마다 빚이 많다. 양질의 일자리가 적어 벌이는 시원치 않다.



 소비의 물꼬는 부자들이 터줘야 한다. 부자들은 여전히 여력이 있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흑자는 2010년 월평균 193만원에서 올 1분기 281만원으로 늘었다. 그런데 생각만큼 쓰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소득 상위 20%의 소비성향은 59.5%에 그쳤다. 처분가능 소득의 59.5%를 쓰고, 40.5%는 남겼다는 의미다. 2010년 65%에서 계속 줄고 있다. <그래프>



 부자들은 왜 씀씀이를 늘리지 않는 걸까. 천성이 검소한 부자가 적지 않을 테고, 경기침체로 자신감이 떨어진 부자도 있을 것이다. 더 큰 요인은 부자들이 돈 쓰면서 부담을 느끼는 데 있다. ‘기부나 하지 돈을 헤프게 쓰나’ ‘나는 힘든데, 너는 왜 호의호식하느냐’…. 이런 따가운 시선을 부자들이 모를 리 없다.



 여기에다 정치인들이 반(反)부자 정서를 부추겨왔다. 부자를 적으로 몰아 중산층·저소득층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민을 ‘잘나가는 20%와 살기 힘든 80%’로 가른 게 대표적이다. 요새는 보수 정치인들도 반부자 정서를 득표에 교묘히 이용한다. 진보 진영은 비장의 카드를 잃었고, 부자는 설 땅을 잃은 셈이다.



 자연히 부자들은 돈을 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5만원권 회수율이 28%(100장 중 72장이 사라졌다는 의미)에 그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눈치 안 봐도 되는 해외로도 나간다. 지난해 내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은 217억 달러에 달했다. 부자들만 해외에서 쓴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부자들이 많이 썼을 것이다. 같은 기간 외국인이 국내에서 쓴 돈은 50억 달러.



 사회 인식을 바꾸는 게 급선무다. 부자가 국내에서 돈을 써야 누군가의 일자리가 생기고, 소득이 늘어난다. 돈이 돌아 경제에 생기가 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소득 상위20% 가구가 월 26만원씩 더 쓰면 연 16만 개의 일자리와 7조원 이상 GDP가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부자 호주머니의 돈을 최대한 끌어낼 궁리를 하는 게 현실적이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겠다면 방법이 없지만.



 부자들이 돈을 쓸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줘야 한다. 서비스업 규제를 푸는 게 그 하나다. 의료·교육·관광·법률·금융 분야에서 더 많은 돈을 내고, 더 좋은 서비스를 받도록 길을 터주자는 얘기다. 서비스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 중국 등 외국 부자들도 국내에 들어와 돈을 쓸 것이다. 국회를 거치지 않고, 당장 소비를 늘릴 수 있는 것도 있다. 공무원 골프 금지가 대표적이다. 이 조치만 풀어줘도 캐디와 골프장 부근 식당 등 수많은 관련 종사자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몇 차례 경제위기와 보수·진보 간 격렬한 선거가 거듭되면서 시장경제와 포퓰리즘, 사회주의 발상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최경환 경제팀이 차차 정비해주기를 바란다. 이때 저소득층·중산층 소득을 늘리는 것과 함께 고소득층 소비를 촉진하는 것을 하나의 잣대로 삼았으면 한다.



고현곤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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