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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병언 시신 가짜 괴담이 도는 까닭은

중앙일보 2014.08.04 00:35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의우
건국대 교수·법의학
“순천에서 발견된 시체가 유병언이 아니라는데 알고 있느냐?”



 지난달 29일 친구에게서 이런 전화가 왔다. 교직에 있는 친구마저 근거 없는 소문을 기정사실로 믿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천에서 유병언씨 시신이 발견된 이후 온갖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야당 국회의원까지 시신을 본 경찰관의 제보라며 유씨 시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인터넷에선 유씨 시신 사진을 근거로 변사자가 여성이라는 주장도 나돌고 있다.



 사인(死因)을 둘러싼 의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규명하지 못했으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시신이 유씨가 아니라는 의혹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국과수는 유전자·지문 감식에 이어 변사자의 치아와 유씨의 치과 기록까지 대조해 유씨 시신으로 판정했다. 따라서 시신의 진위에 대해선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국과수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왜 불신이 남는지,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냉정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출동한 경찰이 현장 보전을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변사체가 야외에서 발견된 경우 출입통제선(police line)만 설치할 게 아니라 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도록 천막을 설치했어야 한다. 일본 경찰은 변사체가 발견되면 반드시 대형 천막을 쳐서 윗부분은 물론이고 사방을 완전히 차단해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보전한다. 자연적 또는 인위적인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그 뒤 경찰은 시신을 포함한 현장 스케치, 사진·비디오 촬영 등 기록을 작성하고 분석해야 한다.



 변사체가 발견된 현장에서 다음 세 가지 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첫째, 사망과 관련된 사건 장소와 사망 장소,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모두 같은 경우다. 즉 자살이든, 타살이든 한곳에서 행위가 이뤄지고 숨진 사례다. 둘째, 사건 장소와 사망 장소가 다르지만 사망한 곳에서 시체가 발견된 경우다. 셋째, 사건 장소와 사망 장소는 같지만 시체가 발견된 곳이 다른 경우다.



 셋째 경우는 살해된 뒤 시체가 유기됐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현장 보전과 증거 확보가 더욱 중요하다.



 변사자의 사인을 규명하려면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을 찾아 시신에 대한 소견은 물론 시신이 놓여 있는 환경을 함께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 변사자가 발견된 장소에서 숨졌다고 판단하기에 부적절하거나 모순된 점이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한다.



 시신에서는 시체현상(사망 후 진행되는 각종 변화)을 세심하게 관찰함으로써 모순점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누워 있으면서도 다리가 공중에 떠 있다든지, 엎드려 있으면서도 머리와 다리가 지면에 닿아 있지 않고 신체가 활처럼 휘어져 있는 등 법의학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경우 발견된 곳에서 숨졌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또 시체의 부패 정도로 볼 때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체 밑의 식물이 성장해 있으면서 단순히 눌려 있는 것도 의심해 볼 만한 모순점이 될 것이다. 이런 세세한 분석까지 모두 경찰관이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유씨 시신 발견 현장엔 처음부터 법의관이나 법의학자가 출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지도 않고 단순 행려병자로 예단해 시신 주변 유류품도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 잘못을 저질렀다. 전문가가 현장에 갔더라면 점퍼부터 속옷까지 외제 명품을 입고 금니를 10개나 박은 변사자를 행려병자로 판단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경찰이 현장을 보전하지 않고 장례식장으로 옮겼기 때문에 당시 시신 사진만 갖고 유씨가 그곳에서 숨졌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사망한 뒤 옮겨졌는지를 지금 와서 판단하기도 어렵다.



 변사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가 현장을 거의 찾지 않는 관행도 고쳐야 한다. 경찰관이 검사의 검시 업무를 대행한다지만 책임의식이 강할 리 없다.



 우리나라는 매년 2만5000명 정도의 변사자가 신고된다. 모든 변사사건은 법의학 전문가의 검사를 거쳐 사인이 불분명하면 부검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장을 찾아 사인을 분석할 수 있는 법의학 전문가는 국과수와 대학을 통틀어 수십 명에 불과하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전체 변사자 중 부검률은 20% 안팎에 그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일부 국과수 분소에서 일정 기간 동안 법의관들이 현장에 출동해 검시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과다한 업무로 현장 출동이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변사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은 “더 자세한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고 보도한다. 여기서 사인이란 정확히 말하면 사망의 종류(자연사·자살·타살·사고사 등)를 뜻한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에 규정된 대로 검시는 궁극적으로 사망의 종류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물론 사건에 따라 구체적인 사인을 규명함으로써 사망의 종류를 제대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시체유기임을 명확히 알려 주는 단서를 발견해 사망의 종류를 입증하면 사건 담당자들이 수사에 전념할 수 있다. 유씨 시신을 발견한 초기에 사망의 종류를 판단할 수 있었다면 의혹이 지금보다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박의우 건국대 교수·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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