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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영혼 없는 국방부는 박살내야

중앙일보 2014.08.04 00:2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국방부의 잔기술이 부쩍 늘었다. 28사단 윤 일병 사건 이야기다. 국방부는 4월 초의 사건을 7·30 재·보선이 끝난 뒤 슬그머니 기소했다. 그것도 뉴스 주목도가 낮은 주말의 도발이다. 그 다음부터는 낯익은 풍경이다. “최고형을 구형하겠다”는 다짐→만날 똑같은 토요일 국방부 긴급회의→몇십 년째 반복되는 “자리를 걸고 발본색원하겠다”는 약속….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윤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는 잔인하다.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바닥에 뱉은 침을 핥게 하고, 링거수액을 맞힌 뒤 원기가 회복되면 다시 윤 일병을 때렸다. 소름이 돋는다. 지금은 기르던 개에게 침을 뱉고 핥으라 하면 동물보호단체가 들고 일어나는 세상이다. 한모 국방부 장관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우리는 국방부가 더 수치스럽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1%라도 닮았으면 현장에 내려가 유족 앞에 무릎 꿇고 1박2일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다.



 다음은 우리 사회의 들끓는 반응이다. “이게 생지옥이지 군대냐” “GOP 임 병장이 왜 총기를 난사했는지 감이 잡힌다” “군대가 사람 잡는 곳이냐”…. 그리고 “국방부 해체까지 각오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수술을 주문한다. 이미 군은 깊은 불신의 대상이다. 너무 오래 “가혹행위는 사라졌다”고 사기를 쳤다. 군은 “윤 일병이 살아날 것 같다”는 유도신문으로 자백을 받아냈다고 했다. 하지만 더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의사인 윤 일병의 매형과 법무관 출신 변호사인 그의 외삼촌이다. 우리 사회는 “그런 백이 없었으면 그냥 질식사로 덮어졌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뿐 아니다. 인터넷에는 ‘제2의 임 병장·윤 일병을 막자’는 예비역의 글이 판친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우면 그냥 탈영하라는 것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영혼 없는 국방부를 못 믿겠다는 분위기다.



 우리는 안다. 군이 또 깔아뭉개며 넘어간다는 사실을.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관심병사’보다 ‘관심국방부’가 더 심각한 문제로 비친다. 남북 대치를 핑계 삼아 군을 마냥 ‘성역’으로 남겨 두기 어렵다. 군을 바꾸려면 사소한 것에서 대규모 실험까지 망설일 때가 아니다.



 우선, 더 이상 대장 출신의 국방부 장관은 보고 싶지 않다. 유럽에는 여성 국방부 장관도 수두룩하다. 그 어느 막강한 군대, 그 어느 선진국에도 문민통제는 확고한 원칙이다. 언제까지 우리 군만 갈라파고스섬처럼 남겨 둘 수 없다.



 그 다음, 장교·하사관의 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직업군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북한 공산당이 아니라 연금 삭감이다. 불명예 전역자에겐 군 연금 특혜를 박탈해 국민연금 수준으로 딱 내는 것만큼만 줘 보자. 연금 삭감은 잠자는 장교·하사관을 벌떡 일으켜 세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우 사소하지만 사병들의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는 것이다. 사병이 다루는 비밀이 뭐 대단할 게 없다. 이미 친북주사파들이 국회 국방위에서 온갖 기밀서류를 훔쳐보고, 정보사령부 준장이 차 안에서 외간 여자와 나뒹굴다 얻어맞는 세상이다. ‘보안’과 ‘생명’ 중 당연히 생명이 우선이다. 차라리 사병들이 휴대전화로 가혹행위를 찍어 사이버에 올리도록 해야 한다. 세상과 소통하면 극단적 선택도 막는다.



 요즘 걸핏하면 ‘대통령 책임’으로 모는 분위기에 편승할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윤 일병 사건 기소장을 읽어 봤는지 궁금하다. 이런 잔혹행위는 30년 전에도 없었다. 대통령은 군 최고통수권자다. 멀쩡한 자식들을 맡겼으면 잘 관리해 주는 게 기본적 예의다. 솔직히 임 병장·윤 일병 사건은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정치감각이 돋보이는 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다. 어제 긴급최고회의 호출에 미적대는 군 수뇌부에 상소리로 “XX, 오라면 와!”라고 쏴붙였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 면전에서 책상을 내리치며 “이건 분명한 살인이다. 당신들은 자식도 없느냐”고 박살을 냈다. 그래,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분노한 민심에 쇼라도 해야 한다. 더 이상 군의 자가(自家)수술에 맡겨 둘 일이 아니다. 납세자를 대표하는 국회에 군 개혁위원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그게 바로 문민통제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바로잡습니다 시시각각 중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군 수뇌부에 상소리로 “XX, 오라면 와!”라고 쏴붙인 적은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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