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근절·색출’ 대책 쏟아냈지만 자식 군대 보낸 부모들 향한 군 지휘부 반성문은 없어“사과하면 책임” 의견충돌 소문
오후 4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한 장관은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수치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며, 이번 사건을 보는 국민적 시각은 분노와 공분 그 자체”라고 입을 뗐다. 그러면서 “군에 입대한 장병들을 건강하게 부모님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군 지휘관들의 의무”라며 “이번 사고의 가해자·방조자·관계자들을 일벌백계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직후 국방부는 ▶전군 차원의 병영 내 ‘구타·가혹행위 색출·근절 작전’ 시행 ▶보호관심병사 관리시스템 개선사항 조기 시행 ▶병사 고충신고 및 처리시스템 전면 개선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 운영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구타 색출과 근절에 ‘작전’이라는 용어까지 붙인 걸 보면 다급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윤 일병 사망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석 달이란 기간이 흐른 뒤다.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나 피해자 가족의 노력이 없었으면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얘기가 세간에 파다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군 지휘부는 반성에 인색하다. 2일 회의가 끝난 뒤에도 대국민사과는 없었다. 육군 지휘부는 장관에겐 “죄송하다”는 말을 몇 차례 하면서도 공개된 사과는 미루고 있다. 담당자들을 기자실로 보내 비공개로 뒤늦은 설명을 하거나 “육군 총장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대리 사과가 고작이다. “육군 총장이 사과를 할 경우 책임이 따를 수 있다”며 국방부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는 소문도 돈다. 군 내 구타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로선 억장이 무너지는데 군 지휘부는 책임 떠넘기기만 하는 셈이다.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2년 3월까지 접수된 군 인권침해 진정 사건은 405건이다. 이 가운데 폭력이나 가혹행위가 122건으로 30.1%나 된다. 생명권 침해와 언어폭력도 각각 56건과 45건에 달한다. 닷새에 한 건씩 군 인권침해 사건이 접수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폐쇄적이고 음성적인 군 문화를 고려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다. 아들이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 중인 한모(48)씨는 “군에 안 가겠다는 애를 억지로 보냈는데 이런 사고가 반복되면 누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정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