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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마음과 귀를 항상 사회쪽으로 열어 놔야

중앙선데이 2014.08.03 00:27 386호 12면 지면보기
박영희 작곡가에게 “어떤 작곡가이십니까”라고 묻자, “저는 땀을 흘리며 일하는 작곡가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정동 기자
세계의 벽을 넘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박영희(69·사진) 작곡가도 그런 경우다. 그는 ‘유럽 현대음악계의 대모’다. 어느 음악학자는 “뒤에 오는 여러 여성 작곡가들의 터전을 마련했다”고 그를 평가했다. 1994년 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독일 브레멘 국립예술대 작곡과 주임교수가 됐다. 부총장으로도 선출됐다. 여성 작곡가로서는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독일어권 전체에서 최초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럽 전체에서 여성 작곡과 교수는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 현대음악계의 대모’ 재독 작곡가 박영희

여러 콩쿠르에서 첫 번째 여성 우승자가 된 그는 여세를 몰아 1980년 세계 최고(最古)·최고(最高)의 현대음악 잔치인 도나우에싱엔 페스티벌에서 위촉 관현악곡 ‘소리’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됐다. 그는 여러 굵직한 음악제에서 ‘단골’ 심사위원이자 위촉곡 작곡가로 활동해 왔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파울 자허 재단’은 박영희 작곡가의 모든 악보 원본을 소장하고 있다. 여성 작곡가로서는 세 번째다. 이 재단은 바흐·모차르트·베토벤 등 역사적 작곡가들의 친필 악보와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보존해 음악학 연구를 돕는 재단이다.

최근 그가 고향 청주를 방문했다. 통합청주시 출범을 맞아 청주 시립교향악단이 지난달 10일 그의 ‘소리’(1980)를 한국에서 초연한 것이다. 박영희 작곡가를 만나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현대음악에 한국의 정서와 전통, 음악을 접목했다.
“가급적 작품에 우리말 제목을 붙인다. ‘소리’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1980년 5월 광주가 배경이다. 사건의 의미를 음으로 표현할 때 음계나 리듬, 전체 구도 등 음악적 문제는 2차적이다. ‘소리’에서는 전라도 농악 리듬이 나온다. 상여꾼들이 부르는 구슬픈 노래인 향두가(香頭歌)도 나온다. 향두가 가사와 실음(實音)을 70년대 말부터 모았다.”

-어떤 작곡 프로세스를 거치는지.
“작곡가마다 다른데, 나는 특히 리서치 기간이 길다. 4~5년이 걸린다. ‘달 그림자’를 쓸 때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공부했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으면 작곡에 착수할 수 없다. 전체상이 잡히고 나면 쓰는 기간은 ‘짧다’. 짧은 곡은 6개월,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은 1년 걸린다.”

-작품 ‘달 그림자’는 동양과 서양의 ‘퓨전(fusion)’을 지향한 것이라고 보면 되나.
“퓨전이 아니라 ‘같이 보는 것’이다. 노자의 말과 서기 500년 전 그리스의 비극을 같이 놓고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를 살피는 것이다. 퓨전은 이 생각과 저 생각을 섞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제 경우는 ‘이거는 이거고, 저거는 저거다’라는 관점에서 딱 나눈다. 음향도 다르게 한다. 노자 사상, 한병철씨의 시가 나올 때와 오이디푸스가 자식들에게 악을 쓸 때 음악이 완전히 다르다.”

-음악과 사회, 공동체는 어떻게 엮이는지.
“작곡가는 마음과 귀를 항상 사회 쪽으로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곡가는 산 속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음악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호흡하는 이벤트가 작은 도시나 서울의 구 단위에서는 가능하다. 서울 전체는 너무 크다고 본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공원도 좋고 광장도 좋다.”

-종교가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었는지.
“종교는 천당이나 기도보다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와 깊은 관계다. 2005년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1821~1861) 신부님에 대한 책자 4권을 가톨릭 청주교구로부터 받았다. 그 후 그분으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작곡을 많이 했다. 마침 그때 ‘무엇이 겸손인가’를 찾고 있었다. 최 신부님의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바치는 겸손한 삶’을 발견했다. 그분은 시대를 앞서간 놀라운 천재였다.”

-작곡에 대해 알면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나.
“아니다. 작곡이나 음악에 대해서 알 필요가 없다. 악기를 배워본 적이 없어도 된다. 제가 아는 많은 청중은 ‘도레미파’도 모른다. 음악회에 갈 때에는 아는 것을 모두 집에 놓고, 열린 가슴만 지니고 가면 된다. 연주자·작곡가들은 정성을 다한다. 그래서 항상 들을 것이 있다. 항상 뭔가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음악을 들으면 뭐가 좋은가.
“음악을 자꾸 듣는 경험의 반복을 통해 감성이 발달된다. 독일을 포함해 유럽의 중·고등학교에서 음악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그 여파로 청소년들이 감성 대신 폭력성을 발달시키고 있다. 인성이 형성될 때 음악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 음악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행해지는 수학이다. 음악을 하면 ‘근본적인 머리’가 좋아진다. 왜냐면 음악을 하면 정신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한번에 두 가지 음악을 들을 수는 없다. 음악 시간은 학생들에게 무위의 시간이기도 하다.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음악은 또 치유한다. ‘마디’라는 곡을 썼는데, 마디는 ‘맺힘’이다. 송강 정철의 속미인곡을 보면 ‘맺힌 일이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람 마음에는 누구나 맺힌 일이 있는데, 시뿐만 아니라 음악은 맺힌 일을 강물처럼 흘러버리게 할 수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초기 작품과 최근 작품이다. 엄마들이 장남·장녀와 막내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아무리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가도 에디터가 손을 많이 본다. 음악가는?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문법을 다 아는 게 아니다. 에디터들이 작가의 결정적인 사고나 사상·철학을 고쳐주는 것은 아니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대화로 학생 자신이 스스로 고치도록 이끌어 간다. 에디터처럼 직접 고쳐주면 그 악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나중에 ‘이거는 내 색채가 아니다. 선생님이 해준 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게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 다시 태어나도 하고 싶은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는데.
“다시 태어난다면, 주부로서 애들을 다 키운 다음에 소설가가 되고 싶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는 제가 작곡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또 어렸을 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저렇게 ‘큰 여자’가 돼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물론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고 정진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려면 국가·정부가 무엇을 지원해야 할까.
“일본의 경우 어떤 일본인 작곡가가 해외에서 상도 받고 유명해지기 시작하면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이 나선다. 예컨대 일본인 작곡가의 교향곡에 일본인 솔로이스트에 독일 오케스트라를 붙여 연주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중앙SUNDAY 독자에게 강조할 말씀은.
“너무 일만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위를 ‘생각’만 하시지 말고 ‘실행’하셨으면 좋겠다. 안 그러면 큰일 난다. 유럽 철학계에서는 무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좋은 방법은 음악회에 가는 거다. 한데 아는 분 때문에 음악회에 가는 경우 꽃보다는 표를 사서 가는 게 좋다.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가야 연주자들이나 작곡가들이 더 큰 정성을 들이게 된다. 굉장한 차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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