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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고수에게 듣는다] 한국 ‘주식시장 2.0’의 필요조건

중앙선데이 2014.08.03 01:16 386호 18면 지면보기
필자는 어린 시절 부산에 사는 부자 집 자제들이 다 모인다는 초등학교를 3년간 다녔다. 평범한 중산층의 아들이었던 필자는 그들로부터 심한 이질감과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잣집과 우리 집을 비교해보니 결국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차이였음을 발견했다. 즉 그들에겐 공장·선박·창고·트레일러·상가 등이 있었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곳에서 월급을 받는 근로자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필자는 생산수단을 갖는 것이 일생의 꿈이 되었다. 학창 시절 이병철, 정주영 등 기업가들의 전기를 읽으며 사업의 꿈을 키웠고 결국 대학에 갈 때도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고 보니 부족한 게 너무 많았다. 자금도, 조직도, 기술도 없는데다 사업아이템 구상도 마땅치 않았다.

소년, 배당에 눈을 뜨다
좌절감에 방황하던 중 우연히 학교 앞 서점에서 증권분석의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때까진 주식 투자가 서로 돈을 빼앗아 먹는 투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주식이 단순히 거래를 위한 종이 쪼가리가 아니라 기업 소유권의 일부라는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됐다. 20살의 나이에 드디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었다. 창업이 아니라 투자라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다.

이후로 나는 내가 갖고 싶은 회사의 주식을 찾는 가치 투자자가 되었다. 하지만 주식투자를 하던 초창기에 주식이 기업의 소유권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았지 정작 실감할 수는 없었다. 컴퓨터를 통해 거래가 되며 주가가 결정될 뿐 그 이면의 기업활동이 주가에 정확히 반영되는지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다 일대의 전기를 맞게 된 사건이 생겼다. 갖고 있던 주식에서 나의 주식 계좌로 배당금을 입금해준 것이다. 필자는 기업이 1년간 열심히 일해 번 돈 중 일부를 현금으로 되돌려준 그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기업활동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주식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이 맞다’는 확신을 얻은 순간이었다.

배당확대 정책이 지지받는 이유
요즘 주식시장에선 배당이 화두다. 새로 꾸려진 최경환 경제팀이 배당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기업의 과도한 유보에 대해서는 페널티를 주고 배당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물론 의도는 기업이 소유한 자본을 가계로 돌려 소비 부양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것처럼 주주 중심의 사고전환으로 자본시장을 혁신하겠다는 정도까지는 아닌 셈이다.

추진 가능성과 실효성에 대한 여러 논란에도 이 정책이 시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한국경제가 저성장으로 접어들었다는 공감대가 이미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고성장 시기에는 유보와 재투자가 기업가치를 늘릴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하지만 사업기회가 대폭 줄어든 저성장 시기에는 재투자에 따른 수익률이 예전 같지 않다. 기업도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으니 투자에 소극적이고, 그동안 현금만 쌓아 둔 것이다. 투자할 곳이 없으면 돈을 돌려달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먹히는 배경이다.

한국 배당 수익률 1.3%
둘째, 우리나라의 배당 수익률이 선진국 대비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조사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코스피의 배당수익률은 1.3%에 불과해 주요 10개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은 2%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대만은 3.7%나 된다. 배당성향 또한 15.8%로 꼴찌다.

주주들의 배당 요구를 기업의 성장을 해치는 과도한 요구라고 치부하기엔 배당 노력이 너무 부족했다. 배당확대 정책이 입법을 거쳐 실제 배당확대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일단 이런 논의가 시작되어 기업의 의식이 바뀔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성장 시대에 맞는 기업들의 자본배치 정책의 변화로 코스피 지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한국 주식시장 2.0’으로의 진화가 기대된다. 또한 다가올 주식시장 2.0에선 필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배당을 통해 주식이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생산수단의 소유권으로 건전한 인식의 변화가 생겨나길 희망한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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