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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나 술이나 그게 그거 … 마음 채워주면 잘 팔려

중앙선데이 2014.08.03 01:23 386호 20면 지면보기
자신이 조성한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서 맨발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는 조웅래 회장. 황톳길 주변에선 숲속 음악회와 맨발 마라톤 대회도 열린다. [사진 맥키스]
평범한 회사원에서 벤처 사업가를 거쳐 주류 회사 회장님으로…. 맥키스 조웅래 회장(55)의 전공은 술과는 무관하다. 사회에서의 첫 발도 술과 거리가 멀었다. 마산고에 이어 1985년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대기업인 삼성반도체통신.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존재감도 없고 왠지 부속품 같다는 생각”에 입사한 지 3년만인 88년 사직서를 냈다. 그의 아내를 비롯해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고집을 접지 않았다.

음악 서비스업에서 술 회사로 갈아탄 맥키스 조웅래 회장

퇴직 후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다시 중소기업에 들어가 개발 업무와 기술 영업을 했다. 창업 기회를 엿보던 그는 90년대 초 전화가 많이 보급되자 유선망을 활용한 전화정보 사업이 유망하다고 봤다. 곧바로 회사를 세웠고 처음엔 전화로 운세를 봐주는 서비스를 했다.

그의 오늘이 있게 한 건 5425다. 특이한 숫자로 유명해진 이 회사를 차린 것은 96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딱 1년 전이었다. 700-5425는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이 활성화되기 전에 음악을 통해 마음을 전달해 주는 서비스였다. ‘응답하라 1997’ 세대들에겐 추억의 광고 문구이기도 하다. 당시 광고 카피는 “보여 줄 수는 없지만 들려 줄 수는 있다”였다. 통신기기의 변화 틈새에서 소리(음악)를 ‘듣는 것에서 들려줘 보자’는 발상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음악을 통해 마음을 전달한다’는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직원은 20명도 안 됐지만 월 매출이 20억원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3분짜리 가요를 연인이나 친구에게 들려주려면 300원을 내야 했다.

기업 도산이 이어진 외환위기 시절, 대기업들도 광고비를 아꼈지만 그는 연간 100억원을 광고에 쏟아부었다. TV나 라디오에선 쉴 새 없이 700-5425가 흘러 나왔다.

“외환위기로 대부분의 기업이 움츠리고 있을 때 대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했다. 이유는 단 하나.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후 무선 인터넷 사업 진출을 염두에 뒀으므로 5425란 숫자를 대대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

5425로 어느 정도 벌었는지 묻자 조 회장은 “아이디어 하나로 벌긴 좀 벌었다”며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럼 숫자 5425는 무슨 뜻이었을까?

“특별히 의미는 없었다. 광고할 때 앗싸 노래방 기계를 연상시키는 ‘앗싸이오’에서 5245를 쓰게 되었다. 5425란 숫자를 브랜드화한 거다.”

그의 예상과 선택이 늘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다. 5425는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에 밀려 2003년부터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진다.

“휴대폰이 많이 보급되면서 무선 인터넷 사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무선 인터넷망의 개방이 지연돼 사업영역을 확대하지 못했다. 사업하면서 그때가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5425 이후 다른 사업을 찾아보고 있을 때인 2004년 충청 지역의 소주회사인 선양이 매물로 나왔다. 조 회장은 바로 인수를 결정했다. 경험도 없는 제조업에, 그것도 경남 함안 출신인 그가 연고도 없는 충청도의 소주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결심에 주변에선 다들 의아해했다.

“소리나 술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5425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소리를 팔았다. 술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으로 어차피 대중의 마음을 잘 읽고 채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종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제품 잘 만들어서 홍보·마케팅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그는 충청 지역 소주회사란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 9월엔 40년 간 사용됐던 ‘선양’이란 회사명을 ‘더맥키스컴퍼니’로 바꿨다. 국내 최초로 믹싱주(酒) ‘맥키스’도 개발했다.

“섞어 마시기 편한 칵테일용 술인 맥키스는 가볍게 즐기는 젊은층의 음주문화 트렌드에 맞춘 제품이다. 강권하고 폭음하는 한국의 잘못된 음주문화 개선을 선도하고 싶다.”

정치엔 관심 없어
치킨집 사장님이 7·30 재·보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때문인지 “정치에 꿈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주변에서 정치 얘기를 하는데, 나는 정치엔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신뢰를 보내주니까 흥이 나서 자꾸 즐거운 일을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다.”

다양한 도전의 삶을 살아 온 그의 좌우명은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미치려면 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중요하고, 흥미가 있어야 한다. 사업하는 23년 간 아침이 기다려질 때가 가장 좋았고 지금도 그렇다. 뭔가 설레고 할 게 많아야 아침이 기다려진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종착점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긍정의 힘’을 믿고 한 걸음씩 내딛다보니 또 다른 한 걸음이 보였다.”

그는 최근 자서전 『첫 술에 행복하랴』를 냈다. ‘좌절 없이 되는 놈이 세상천지 어디 있간?’이란 부제가 눈에 띈다. 출간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벌써 4쇄를 찍었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 주류업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콘텐츠 사업을 준비 중이다.

취미는 맨발로 걷기와 마라톤
조회장은 평생 골프채를 한 번도 잡아보지 않았다. 운전면허가 없어 운전대도 잡아보지 못했단다. 대신 마라톤에 빠져 있다. 그는 지난 7월13일 경북 영덕 로하스해변 마라톤에서 3시간51분 만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로써 2001년 이후 그의 마라톤 완주 기록은 48회로 늘어났다.

“보통 일요일에 대회가 열리는데 완주 후 월요일 아침에 출근할 때는 왠지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몹시 건방진 아침을 맞이한다(웃음).”

마라톤 말고 취미가 하나 더 있다. 대전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것이다.

“거의 매일 새벽에 계족산에 가서 맨발 걷기를 한다. 자연을 벗 삼아 말랑말랑한 황톳길을 걷다보면 머리도 비워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인지 그의 요즘 건배사는 ‘하체 튼튼, 만사형통’이다.

그가 말하는 계족산 황톳길은 충청 주민들의 산책로이자 휴식 공간이다. 원래부터 황톳길이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4월, 친구들을 대전으로 초대해 계족산 나들이를 갔다. 일행 중 여성 두 명이 하이힐을 신고 왔다. 그래서 나와 친구 한 명이 운동화를 벗어주고 맨발로 자갈길을 걸어봤다. 걷는 동안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날 저녁 모처럼 숙면을 취했고 다음날 너무 개운했다.”

맨발 걷기의 효과를 체험한 조 회장은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족산에 황토를 깔기 시작했다. 그 후 자신도 매일 새벽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다. 황톳길 상태를 점검한 뒤 보수 지시를 하고 회사로 향한다. 황톳길에선 4~10월 매 주말(토·일요일 오후3시)마다 숲속 음악회가 열린다. 그가 지원하는 맥키스오페라단(단원 9명)의 ‘뻔뻔(fun fun)한 클래식’ 공연이다. 황톳길을 깔고 유지·보수하며 음악회 등 행사를 하는 데 연 6억원 이상이 소요되지만 그는 이웃과 자신의 심신을 치유하는 ‘남는 장사’라고 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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