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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사경 헤매던 루푸스 환자 200여 명에게 새 삶

중앙선데이 2014.08.03 01:36 386호 22면 지면보기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55)은 지난달 13일 오전 장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중환자실을 찾았다. 중환자실에선 루푸스에 걸린 25세 여성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25> 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배상철 원장

배 원장은 보호자를 만나 환자의 상태를 설명한 뒤 “비록 지금 병원을 떠나지만 늘 의료진과 연락하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대구의 영안실과 장지에서도 수시로 의료진과 통화하며 환자를 돌봤다. 장인의 입관(入棺)이 끝나자마자 서울의 병원으로 되돌아와 환자에게 달려갔지만 살려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회진 길에 배 원장은 환자의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다른 병원에서 딸의 장례식을 치르려고 앰뷸런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 너머 배 원장과 눈이 마주치자 차를 세우게 했다. 배 원장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선생님, 그동안 너무나 감사했어요. 너무나….”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고, 배 원장은 눈물이 핑 돌았다.

“회한이 밀려오고 기운이 빠지는 것을 떨치기 힘들었어요.”

배 원장은 생사가 오가는 루푸스 치료의 세계적 대가다. 지금까지 사경을 헤매며 찾아오는 환자 200여 명을 살려냈다. 하지만 때론 속절없이 환자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이럴 때엔 온몸이 처지지만 ‘소명’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소명은 그의 스승인 미국 하버드대학 브리검앤우먼스 병원의 메튜 리앙 교수가 최근 강조한 덕목이기도 하다.

배 원장은 중학생 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심장내과에 관심이 있었지만 ‘류마티스 전도사’였던 김성윤 전(前) 한양대 교수에 이끌려 류마티스를 전공으로 삼았다. 1996년 리앙 교수의 문하로 들어가선 루푸스를 전공했으며 현재 세계 루푸스 전문가 모임(SLICC)의 위원 30명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3000여명, 루푸스 환자 1500여명을 돌보면서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책을 선물하는 등 심신을 함께 어루만지며 진료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연구 분야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 290여 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특히 연구 설계를 짜서 환자들을 추적 조사하는 ‘코호트 연구’에서 독보적이다. 배 교수가 이끌고 있는 ‘배 루푸스 코호트’(1200명)와 ‘배 류마티스 관절염 코호트’(2200명)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배 교수는 2008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정 류마티스관절염 임상연구센터의 수장으로 일한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 등 전국 32개 병원의 연구진 100여명과 함께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의 분포·특징·치료과정·약 부작용 등을 살피는 코호트 연구를 이끌고 있다.

배 교수는 “류마티스 관절염과 루푸스 등은 아직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좋은 약들이 속속 개발돼 치료 성과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병들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연구를 여럿 수행 중이다. 여기엔 빅 데이터 정보를 활용한 류마티스 관절염 예후와 약물반응 예측연구, 중간엽 줄기세포를 이용한 루푸스 치료 등이 포함돼 있다.

배 원장은 리앙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버드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약물경제학을 공부했다. 경제적 고려까지 포함하는 치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분·1초를 아끼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가족에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해 늘 미안하다. 그러나 의료계의 발전과 전국에서 찾아오는 위중한 환자의 치유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2000년 초 금강선원 혜거 스님으로부터 ‘보관(普觀)’이란 법명을 받았다. 자신의 법명대로 넓게 보면서 넓은 영역의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소명이라고 믿는다.


이성주 코메디닷컴 대표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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