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실패도 수습도 빨리빨리 … 사양산업 옷 개념 바꿔 황금알

중앙선데이 2014.08.03 01:45 386호 24면 지면보기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창업자는 지난 4월 “3만여 명의 파트타이머와 아르바이트 직원 중 학생을 제외한 1만6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해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다. 청년 노동인구 감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브랜드 DNA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앙포토]
주변으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는 질문이 있다. “큰 성공을 거머쥔 창업자들의 공통점은 뭐냐”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단언컨대 창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다. 내가 생각하는 창업가 정신이란 이렇다.

<37> 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다다시

‘기회를 포착해, 난관과 역경을 뚫고, 혁신적 사고와 행동으로, 새 가치를 창출하는 것.’

세계적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Uniqlo)를 만든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5)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이 정의에 교과서적이라 할 만큼 딱 맞는 인물이다. 1980년대 이미 사양사업으로 여겨지던 봉제업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생산과 서비스 방식, 마케팅 방식을 창안했다. 이를 통해 놀랄 만큼 싼 값에 좋은 품질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 일본 최고 부자 자리를 다투는 거부(巨富)가 된 이후에도 변화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실패를 성공의 열쇠로 본다. ‘옷을 바꾸고, 상식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패스트리테일링의 경영 모토다.

유니클로는 제조·유통 일괄형 의류(SPA, Speciality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브랜드다. 자라(ZARA), H&M, 갭(GAP)에 이어 세계 4위다. 3위와의 간격을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 4대 업체 중 지난해 20% 이상(매출액 기준) 고성장한 브랜드는 유니클로뿐이다. 지난해 11월 마감한 회계 1분기 순이익은 418억엔(약 4200억원)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연출했다.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한 3890억 엔(약 4조원)이었다. 세계 14개국에 1500여 개 매장이 있다. 2020년까지 매출 5조엔(약 54조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야나이는 와세다대 정경학부를 나왔다. 대학 시절 그는 공부보다 마작과 록음악, 히피 문화에 빠져 살았다.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양복판매점과 조그마한 건설업체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보다 못해 나섰다. 당시로서는 큰 돈인 200만 엔을 건네며 세계 여행을 권했다. 베트남전 반대 시위로 학교가 3개월간 임시휴교하자 배낭을 메고 나섰다. 덕분에 선진국의 위용, 신흥시장의 잠재력에 일찌감치 눈 떴다.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졸업 뒤 슈퍼마켓 체인 회사에 10개월쯤 다니다 낙향했다. 빈둥거리는 아들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부터 네가 양복점을 맡아라. 뭘 하든 1등이 돼라.”

이후 12년 간 야나이는 장사에 집중했다. 기성품 양복으로부터 시작해 남성 캐주얼로 범위를 넓혔다. 1984년 마침내 대도시 히로시마에 첫 캐주얼 전문점을 열었다. 개업 첫날부터 수 천 명이 몰렸다. 가게 컨셉트가 완전히 새로운 덕이었다. 야나이가 가진 문제의식은 ‘옷도 라면이나 간장처럼 부담 없이 살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답을 동종업계가 아닌 편의점이나 미국에서 본 대학생활협동조합 매장에서 찾았다. 점포는 창고 같은 개방형 공간으로 꾸몄다. 값 싸고 질 좋은 기본 아이템을 팔았다. 옷은 걸지 않고 유형과 색깔 별로 접어 손님이 직접 집어갈 수 있게 했다. 앞치마를 두른 점원은 손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대신 조용히 자기 일을 했다. 매장 문은 오전 6시에 열었다. 주요 고객인 학생들의 등교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름 하여 ‘유니크 클로딩 웨어하우스’. 아예 점포명에 ‘창고(Warehouse)’라는 단어를 넣어버린 것이다.

야나이는 가게 수를 착실히 늘려갔다. 이름도 ‘유니클로’로 바꿨다. 90년 무렵 SPA 방식을 채택한다. 홍콩 브랜드 ‘지오다노’의 경영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덕이었다. 야나이는 그 외에도 월마트의 경영 시스템,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품 개발, 맥도널드의 표준화, 홈 디포의 직원교육 등 전혀 다른 업종의 성공사례를 정력적으로 벤치마킹했다.

2009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소비자에게 옷을 선택하게 하려면 당연히 타 산업보다 매력 있는 상품을 내놔야 한다. 새 음식, 새 휴대전화, 새 자동차와 경쟁해야 한다. 한데 많은 경영자는 생각이 자기 산업 안에 머물러 있다. 그렇게 해선 매출을 늘릴 수 없다. 의류업을 사양산업이라 하는데 이는 곧 쇠퇴기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그 자체가 명쾌한 답을 준다. ‘지금 방식으로는 안 돼!’.”

야나이가 SPA 방식을 택한 것은 싼 값에 좋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시장조사부터 제품기획, 생산, 유통까지를 직접 관장함으로써 단계별 거품을 빼고 효율적 재고관리를 꾀했다. 유니클로의 특징은 ‘소품종 대량생산’이다.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수요를 예측한 뒤 청바지, 티셔츠 같은 기본 아이템을 대량 생산한다. 최대 50여 종의 색상과 폭넓은 사이즈로 다양성을 꾀한다. 좋은 소재를 쓰고 봉재에 공을 들인다. 엄선한 패션 분야 장인들을 중국 현지 하청공장에 보내 품질을 철저히 관리한다. 대신 생산한 전 제품을 인수함으로써 협력사와의 신뢰관계를 공고히 한다. 그럼에도 재고를 거의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라나 H&M이 품질보다 디자인에 집중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을 취하는 것과 정반대다.

유니클로 옷에는 로고가 없다. 화려하고 복잡한 디자인도 찾기 힘들다. 다른 어떤 브랜드 옷과 입어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 야나기가 주장하는 ‘부품으로서의 옷’ 개념에 충실하다. 그렇다고 컨셉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외려 통일성과 일관성을 철저히 유지함으로써 은연중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다. 일본 제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꼽히는 사토 가시와가 로고, 패키지는 물론 매장 디자인까지 총괄한다.

유니클로는 탁월한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으로도 유명하다. ‘유니클락’ ‘럭키라인’처럼 독특하고 중독성 강한 온라인 프로모션, 6종에 이르는 전용 앱, 오프라인과 철저히 연계된 온라인 몰 운영, 세계적 예술가나 유명 브랜드들과의 과감한 협업은 늘 화젯거리다.

유니클로는 일본 최악의 불황기였던 98년, 주로 등산복 안감으로 쓰이던 ‘플리스’를 과감히 채용한 겨울 의류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얇고 패셔너블하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난 신제품 ‘히트텍’을 내놔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은 유니클로의 트레이드 마크다. 덕분에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야나이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직원 교육용으로 펴낸 자서전 『1승9패』 등에서 이런 주장을 펴왔다. “경영자가 연전연승 했다면 새로운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거나 성공 기준이 턱없이 낮다는 뜻이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깨닫고, 빨리 수습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다.”

끊임없는 자기부정과 혁신. 단신(短身)에 골프가 취미인 초로의 신사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