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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포스트 모던 시대의 종교

중앙선데이 2014.08.03 02:21 386호 27면 지면보기
우리가 사는 시대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 변화의 속도가 하도 빨라 변화의 방향에 대해 아무도 가늠하지 못한다. 얼마 전만 해도 백화점에서 아내의 옷을 산 남편이 집에 뛰어갔다고 했다. 유행이 바뀌기 전에 아내가 옷을 입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직접 옷을 주문하는 지금은 뛰어가는 것만으론 유행을 따라가기 힘들다.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이유다.

과거에는 수 백, 수 천 년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가 이제는 훨씬 짧은 기간에 일어나곤 한다. 우리가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도 불분명해지고 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과학과 지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이란 사실이다. 다만 과거와는 달리 종교를 건사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분명한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정치와 종교간의 분리가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 분리는 종교의 자유를 억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확대하게 될 것이다. 더 이상 개인의 종교를 국가가 요구할 수 없고 각자의 양심과 신앙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국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국가의 후원을 등에 업을 때 종교는 늘 타락했었다. 반대로 국가도 종교의 득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며 위선을 낳기 마련이다.

둘째로 과학과 종교의 병행이 이뤄질 것이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립하는 분야가 아니다. 다만 보는 관점과 접근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과학이 ‘어떻게’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종교는 ‘왜’를 말한다. 둘 다 필요하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종교가 담당하고, 종교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과학이 담당할 수 있다. 과학자와 종교인은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적대시하면 안 된다.

셋째로 양심의 자유에 보다 큰 비중을 두게 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다.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권할 수는 있지만 요구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회심의 순간이 있었는데, 그 사실이 보여주는 건 믿음은 억지로 갖게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인간에 대해 인내하며 기다리신다.

넷째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성역은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 이외에는 성스럽지 않다. 인간이든, 제도든, 전통이든,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질문할 수 있고 검증을 요구할 수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아무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인위적인 사회는 없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요구하는 것은 성숙한 인간됨이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게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돼서는 어린 아이 때의 일을 버렸다는 말씀처럼 참된 신앙은 성숙한 인간을 필요로 한다. 종교의 내용 자체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종교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성숙함은 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진리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과정 속에 있다. 하지만 진짜가 아닌 것은 넘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진리는 흔들리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것이다.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는 찬송가 가사와도 같다. 우리의 조상들이 전란이나 가난 등 외부적 환란 중에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던 것처럼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가치관의 극심한 혼돈 속에서 자신의 양심과 소신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김영준 예일대 철학과와 컬럼비아대 로스쿨, 훌러신학교를 졸업했다.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김영준 목사 pastorted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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