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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이후락 잔’에 담긴 수 많은 비화들

중앙선데이 2014.08.03 02:37 386호 29면 지면보기
일명 ‘이후락 잔’이라 불리는 ‘청자 상감 국화문 통형 잔’. [사진 갤러리 아트링크]
지난 6월, 고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봐야 한다는 입소문이 난 전시회가 열렸다. 서울 안국동 갤러리 아트링크가 주최한 ‘고려청자와 그 상속자들’이다. 고려청자와 작품세계가 일맥상통하는 현대작가 하종현·김중만·이수경씨의 근작을, 개인 수장가가 여러 해 수집해온 명품 고려청자와 나란히 선보였다. 천하제일 도자기로 칭송받으며 독창적인 미감을 평가받은 청자 유산의 맥을 잇자는 뜻이 강한 자리였다. 고려청자의 부활을 외치는 국내외 상황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청자를 사랑하는 이들이 몇 번씩 와 보고 갔다는 이 특별전에서 우뚝한 작품은 높이 62㎝가 넘는 ‘청자 상감 포류수금문 매병’이었다. 당당한 풍채에 한시(漢詩)를 곁들인 회화적 구성이 펼쳐져 조각품처럼 보이는 대작으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소곤소곤 뒷얘기가 만발했던 출품작은 따로 있었다. 크기는 작지만 열 점 묶음으로 나온 ‘청자 상감 국화문 통형 잔’이다. 차문화가 발달했던 고려시대에 생산된 다기(茶器)의 하나로 보존 상태가 좋았다. 몸체 중심부에 흑백 상감 원(圓)을 두른 국화문양이 중심을 이루며 틀이 잘 잡힌 기형이다. 높이 9㎝ 안팎에 입지름 6.5㎝ 전후인 이 찻잔은 원래 한 쌍이었던 꼭지 달린 뚜껑이 유실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 소품의 존재감을 올려준 것은 이 물건을 지녔던 옛 주인의 이름이다. 한때 ‘이후락 잔’이란 별명을 붙여준 이후락(1924~2009)이 소장자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내다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돼 유신정권에서 ‘제갈조조’란 별명을 얻으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다. 1972년 5월, 밀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비밀 회담을 벌여 ‘7·4 남북공동성명’ 발표에 한 몫을 했다.

이후락은 정치자금을 떡에 비유하며 “떡을 만지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게 마련”이라는 ‘떡고물’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그가 죽은 뒤 소장품에서 이 찻잔이 나오자 한때 그와 어울렸던 이들 사이에서 비화가 전해졌다. 이 잔을 아꼈던 이후락은 기분이 좋거나 귀한 손님이 오면 잔을 내오라고 해 거기에 술을 따라 대접했다고 한다.

800여 년 전, 차를 나누며 정담하던 자리를 빛냈던 고려청자는 대신 술을 담고 어떤 기분이었을까. 기구한 제 처지를 통탄하지 않았을까. 일본인들은 고려 시대 차 사발을 특별히 ‘고려 다완(茶碗)’이라 이름 붙이고 평생 한 점 소장하기를 염원하며 신주 모시듯 했다. 제 가치를 몰라주는 고향 떠나 남의 집에서 빛을 본 셈이다. 문화재 환수를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이들을 보면 고려 다완이 웃지 않을까 싶다.

경기가 바닥을 친 고미술시장에 낱개로만 간혹 나오던 이 찻잔은 10개 묶음 덕을 봐 그나마 3억 원을 호가했다고 한다. 인생유전, 명품유전이라.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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