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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국민 바렌보임의 용기

중앙선데이 2014.08.03 02:39 386호 30면 지면보기
지난 2004년,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울프상의 예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벨상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하는 이 상의 시상식에는 이스라엘 대통령과 울프재단 이사장인 교육문화체육부 장관이 참석했다. 시상이 끝나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바렌보임은 양복 안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수상소감을 꺼내 작심한 듯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1952년 열 살의 나이로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왔을 때 자신이 읽었던 독립선언문의 내용에 대해 얘기했다. 당시 선언문에는 “모든 접경국 그리고 그 국민들과 평화와 우호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그는 도발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그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독립선언문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다른 나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요? 우리 유대 민족이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보냈다고 이웃 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까요?”

그가 수상 소감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렌보임의 도발적인 수상 소감에 화가 난 교육문화부 장관이 연단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바렌보임 씨가 유감스럽게도 울프상 시상식을 국가를 공격하는 자리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바렌보임은 이에 질새라 자기는 국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독립선언문의 정신을 환기시켰을 뿐이라고 대응했다. 한 술 더 떠서 이 상의 상금을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위해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자기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웬만한 용기가 없으면 힘든 일이다. 하지만 바렌보임은 그 일을 해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회적·정치적 책무를 인식하고 이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용기있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바렌보임은 조국인 이스라엘로부터 배척을 받아왔다. 지난 2001년, 그가 독일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연주회의 앵콜곡으로 이스라엘에서 오랫 동안 금기기 되어 온 바그너의 음악을 기습적으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강제수용소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던 한 노인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바그너의 음악이 듣고 싶어요? 그럼 이스라엘 밖에 가서 들으세요.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조국을 건설했습니까? 고작 이 꼴을 보려구요?”

일부 관객들의 저항이 대단했지만 바렌보임은 끝내 바그너 음악의 연주를 강행했다. 특정한 음악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반인륜적·반민주적 폭거라고 하면서.

그런데 사실 바렌보임의 반민족적(?) 행보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선 1999년, 그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주목을 받았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 언어,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창단 이후 해마다 세계 여러 지역을 돌며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바렌보임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을 때, 이스라엘의 극렬 민족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세요? 우리에게 폭탄을 퍼붓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동족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문화적·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바렌보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것,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부당한 편견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이스라엘 사람 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유대인 정착촌에서는 절대로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심각하다. 도대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을 보면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단원인 한 팔레스타인 소녀의 말이 떠오른다.

“제가 바라는 것은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나서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끝나는 거예요.”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진회숙 음악칼럼니스트 hwesook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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