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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시대공감] 성장의 눈높이, 중진국에 맞춰라

중앙선데이 2014.08.03 02:46 386호 31면 지면보기
최경환 경제팀이 내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내놓은 발언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말이다. 오랫만에 접하는 도전정신이 반갑다.

실제로 한국이 ‘경제기적’을 일궜던 것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갔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할 때 세계은행에서 ‘주제넘는 일’이라며 돈 빌려주기를 거절했지만 한국 정부는 포스코라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어내고 70년대 중화학 산업화의 주춧돌을 놓았다. 80년대 반도체 투자도 국내외에 만연한 비관론를 뚫고 성공한 것이었다.

반면 2000년대 한국경제가 잘못된 데에는 스스로 앞길을 찾기보다 남들이 만들어준 교본(敎本)을 좇으려 했던 데에 큰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해서 가계부채를 잔뜩 쌓고 저축률은 미국보다 더 낮은 ‘선진국형 저성장 경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새 경제팀이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선구자의 길은 항상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필자는 경제팀이 목표를 단순히 ‘불황 탈출’이 아니라 ‘지속적 중(中)성장’으로 잡기를 권하고 싶다.

첫째, 한국은 지금 중진국에 불과하다. 그런데 경제성장률이 선진국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다. 고도성장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하더라도 중진국 수준에 걸맞는 중성장은 이뤄내야 선진국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비교대상을 바꿔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가장 흔하게 비교하는 대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다. 한국이 OECD 회원국이기 쉽게 비교자료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선진국과 비교해야만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OECD는 선진국 클럽이다. 한국이 94년에 겨우 중진국 초입에 진입했는데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것은 주제넘는 일이었다. 이 기준에 맞춘다고 자본자유화를 너무 급하게 한 탓에 97년 외환위기를 맞았던 측면도 크다. 한국경제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수준에 맞게 비교대상을 잡아야 한다.

중성장은 OECD 평균으로 봤을 때에는 고성장이다.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며 자화자찬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중간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G20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가계부채, 고령화 문제들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에 ‘반짝 성장’으로는 해결 전망이 서지 않는다. 중성장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증대와 임금상승이 함께 가야 한다. 정상적인 성장공식은 투자증대에 따른 일자리 창출, 그에 따르는 임금상승이다. 임금상승은 기업의 국내 투자가 함께 일어나야만 지속될 수 있다. 투자증대와 임금상승의 고리를 만드는 데 정책역량이 집중돼야 할 것이다.

투자는 기업인들의 ‘동물적 본능’에 많이 좌우된다. 불확실한 일들이 많더라도 기업인들이 낙관적 전망을 갖고 위험부담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임금상승이 투자증대로 이어지는 ‘분수(噴水)효과’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작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의 규모가 일본보다 훨씬 작고 따라서 내수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기 때문이다.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사가 매출과 이익 증대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그 결과를 함께 나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노사정 합의가 있어야 한다.

재정투입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현재 새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은 자칫하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에 많이 쏠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의 경험을 보면 이왕 시작한 것 제대로 해야지 어정쩡하게 했다가는 결과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일본경제를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으로 파악한 리차드 쿠(Richard Koo) 노무라증권 수석연구원은 ‘정책 지그재그(policy zigzag)’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일본 정부가 아직 불황에서 제대로 탈출하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97년과 200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재정건전화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불황탈출이 최소한 5년 이상 늦어졌고 이에 따라 추가로 투입하게 된 재정자금이 적어도 1조 달러는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도 성급한 재정건전화 논리에 밀려 재정투입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를 거둬 들여서 아예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결과를 만들어낼 때까지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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