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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멈춘 한국 정치제도

중앙선데이 2014.08.03 02:50 386호 31면 지면보기
지난달 30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보면서 한국의 정치제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1987년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정치제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런 논의들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치상황을 보면 현 정치제도가 과연 적합한 지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정치제도는 여러 번 바뀌었다. 크게 보면 한국은 간선 단임 대통령제, 직선 연임 대통령-부통령제, 의원 내각제, 직선 연임 대통령제, 간선 연임 대통령제, 그리고 직선 단임 대통령제 등으로 변해 왔다. 국회의 경우 단원제, 양원제, 단원제 등을 다 거쳤다. 이미 한국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볼 수 있는 제도를 거의 다 경험한 셈이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배경에는 집권자의 권력 강화라는 목적이 있었다. 반면 60년 및 87년에는 독재자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상황에서 정치제도 개선을 통해 권력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다. 현 정치제도는 직선 단임 대통령 및 단원제 국회가 핵심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기에 동시 선거는 드물다. 때문에 신임 대통령은 항상 전직 대통령 때 선출된 국회의원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이럴 경우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현재의 민의보다 과거의 민의를 대변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현 단임 대통령제는 레임덕이라는 부작용도 안고 있다. 임기 초기에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진다. 때문에 임기 말 2년 정도는 상징적인 역할 밖에 못하고 있다.

오늘날 선진 민주국가들 중에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압도적으로 많다.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은 의원내각제 국가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전형적인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원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민의를 더 잘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73년 미국 워터게이트 수준의 스캔들이 터질 경우 내각제 국가는 총리의 사임으로 또는 총선을 통해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 국가의 경우 많은 정치적 논란을 겪은 후 탄핵을 통해서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이를 볼 때 내각제의 매력 중 하나는 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단원제 국회도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유권자 수에 따른 의석 배분으로 인해 인구가 많은 도시의 목소리가 커지고, 그 외의 지역은 소외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진국 대부분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의 인구, 영토 크기, 경제적 및 사회적 수준을 감안해 볼 때 양원으로 구성된 내각제를 도입할 만하다. 세계 경제상황의 변화에 민감한 한국의 경우 신속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질 경우 쉽지 않다. 또 불균형 발전으로 인한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심한 현 상황에선 국회 내에서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도 필요하다.

과거 내각제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 국민정서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독재자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안정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강한 리더십보다 소통 및 과정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내각제를 오히려 안정적인 제도로 느낄 수 있다.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87년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민의를 더욱 정확히 반영하는 정치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할 만 한다.



로버트 파우저 미국 미시간대에서 동양어문학 학사, 언어학 석사를, 아일랜드 트리니티대에서 언어학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를 거쳐 서울대로 부임했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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