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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부양책 만으론 한계 … 한국 경제의 큰 틀 먼저 그려라

온라인 중앙일보 2014.08.03 03:40
최경환 경제팀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 주식 시장부터 불끈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가본 적이 없는 길’이라는 최경환 부총리의 표현만큼 정책 방향에 대한 조언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경제수석, 재무부 장관,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사공일(74)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먼저 큰 그림을 주문했다.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큰 화살표를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 다음에 세부적인 정책들을 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그는 특히 “당장의 대증요법보다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중장기 정책 방향을 우선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불안 없이 한 나라가 모든 생산 자원을 동원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의미한다. 사공 이사장은 잠재성장률은 “노동과 자본의 투입 그리고 우리 경제의 체제적 효율성 제고를 통해 향상되며 이 모든 것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걸친 적극적인 규제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7%로 전망했다. 기존(4.1%)보다 0.4%포인트나 내려 잡았다. 그래서 최경환 부총리 중심의 지금 경제팀은 내수 진작을 통해 경기부양에 주력한다고 했는데.

 “지금과 같은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속에서 내수를 진작시켜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방향은 옳다고 본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내수를 진작하는 데도 과연 어떤 수단으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일단 민간 소비 여력을 키우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내수 촉진은 결국 투자와 소비로 이뤄진다. 현재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소비다. 가계의 소득을 늘려 소비가 늘어나면 투자도 따라온다는 믿음에서다. 기업에는 임금을 올리게 하고 배당을 늘려 가계 소비로 연결시키려 한다. 이러한 기업에 대한 시책이 주로 한계 소비성향이 낮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계에 그 혜택이 간다면 경제 전반에 걸친 정책 효과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향상에는 역행할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최 부총리는 경기부양책을 두고 ‘가지 않은 길’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느 정도 사전 이정표를 갖고 시책을 펴는 것은 물론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끝났고 경제 회생에 정치권도 적극 협력하라는 국민적 여망도 드러났다. 새 경제팀은 우선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할 큰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그 큰 틀 안에서 구체적 내수 진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큰 틀 없이 단기 부양책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구체적으로,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활용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보나.

 “지난 수년간 우리 대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에 활발히 투자했으며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중국은 물론이며 싱가포르 등 경쟁국에 비해 아주 저조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국내외 기업들이 왜 우리나라에 투자를 꺼리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그 이유를 파악하고 투자를 막는 장애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기업은 수지타산이 맞으면 정부가 투자를 막아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할 것 아닌가.

 기업의 사내유보금 활용도 채찍보다는 연구개발(R&D) 투자와 중소·중견기업과의 협업을 위한 투자 등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이 성장잠재력 제고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가계부채가 소비를 늘리는 데 큰 짐이 되고 있다.

 “맞다. 그래서 한계 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높은 저소득층이나 서민들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좀 더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도 정부가 추진하곤 있지만 부채 구조 자체를 개선해주기 위한 보다 과감한 서민 가계부채 경감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



 -일각에선 우리도 일본의 아베노믹스 같은 과감한 처방을 왜 하지 못하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아베노믹스가 불가피했던 일본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일본은 부동산 등 자산 버블이 붕괴하면서 디플레이션이 찾아왔지만 우리는 지금 일본처럼 장기 침체나 디플레이션에 빠진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를 따라 하자는 일부 주장도 있다. 그런데 양적완화란 금리 같은 전통적인 정책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소지가 없거나 통하지 않을 때 쓰는 비전통적 정책수단이다. 우리는 금리 조정 등 전통적 정책 수단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어 양적완화 운운할 단계는 아니다.”



3년 반 뒤 어떤 경제를 만들지 비전 세워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31년에는 0.55%까지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머지않은 미래에 사실상 성장이 멈출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안은.

 “우선 우리 인구의 고령화와 근로시간 단축 등을 고려할 때 노동력 투입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단지 여성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소지가 남아 있어 다행이다. 이를 위한 다방면의 정책적 노력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좀 더 긴 안목에서 이민 정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아울러 강조돼야 할 것은 경직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생산적 노사관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 근원을 경직된 정규직 시장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그 다음엔 투자 촉진을 위해 기업 투자 여건을 개선해 줘야 한다. 투자를 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털어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돼야 한다. 기업들은 해외 투자를 선호하고 있다. 왜 기업들이 나가는지를 기업인들에게 물어보고 이를 시정해야 한다. 정책입안자들이 기업투자 담당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끝으로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효율성 제고를 위한 노력, 즉 모든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추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처리 과정만 봐도 행정부와 국회를 위시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시급한 개혁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을 강한 의지로 국민을 설득해 추진해 나간다면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다할 때까지 잠재성장률을 적어도 1%포인트 정도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얼마만큼 의지를 갖고 일관적인 정책을 펼치느냐의 문제다.”



 -모든 정부가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해야 하며 어떤 규제를 먼저 없애야 하나.

 “지난 3월 박 대통령이 주재했던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보자. 마라톤 회의를 하고 나름의 성과도 냈지만 후속 회의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 회의가 정규화돼야 하고 대통령 일정에 매월 몇째 주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로 고정시킴으로써 규제개혁에 대한 국정 우선순위와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국내외에 부각시킬 수 있다. 규제는 그 성격상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경우가 많아 개별 부처에만 맡겨서는 해결하기 힘들다. 부문별로는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가 가장 시급하게 해소돼야 할 부분이다. 그래야 투자도 늘고, 내수도 촉진되고, 양질의 일자리도 늘어난다.”



 -대통령이 규제만 챙길 순 없지 않나.

 “대통령의 힘이 실린 부총리가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총리가 중장기 경제정책 조정의 실제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기획 기능과 예산권을 가진 부총리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더라도 중요한 규제개혁은 정치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것도 필요한 정책과 인기 없는 구조조정을 추진할 정치 리더십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강한 의지로 규제개혁을 직접 꾸준히 챙길 수밖에 없다.”



 -소비 진작 중심의 경기부양이라는 게 결국 그간 성장을 이끌어 온 수출주도형 기업들이 내수나 고용엔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이 상황에서 다시 수출을 위해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펴는 것은 어려워 보이는데.

 “물론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하는 국내외 기업 전체의 투자와 수출에 유리한 정책을 펴야 한다. 일자리 창출 면에선 수출의 효과가 낮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내수 진작은 결과적으로 수입 증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것이 직간접적으로 원유 등 수입을 유발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수입을 위해 수출을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수출을 통한 적정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유지는 거시경제와 금융의 안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만난 사람=남윤호 중앙SUNDAY 편집국장

정리=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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