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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는 만들어진 허상” vs “대선 땐 다시 나타날 것”

온라인 중앙일보 2014.08.03 03:36
지난달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왕지동에 마련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 선거 캠프 풍경이다. 개표 초반 이 후보가 크게 앞서나가자 지지자들이 함성을 터뜨리며 크게 기뻐하고 있다. [순천=뉴스1]


탈(脫)지역주의는 가속화될까.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의 전남 순천·곡성 당선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임은 분명하다. ‘지역감정은 난공불락이며 호남에선 특히 그렇다’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의 당선이 ‘지역주의 해소에 첫 물꼬를 텄다’는 점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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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로 지역주의가 계속 약화될 것인가”라는 부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산업화·도시화·현대화에 따라 전(前)근대성의 산물인 지역주의는 크게 완화될 것”이라는 게 해체론의 근거다. 반면 “이정현의 개인기에 의한 일회성 이벤트다. 양당 구조에서 지역주의는 쉽게 허물어지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정현 찍었지만 새누리당 싹수 없다”

지역적 투표를 할 것인지에 대해 순천·곡성 주민들의 입장은 유보적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100명에게 “2년 뒤 총선에선 어떤 후보를 찍겠는가”라고 묻자 대다수가 “이 의원이 이번에 하는 거 보고”라는 답이 돌아왔다. “과거엔 당만 보고 찍었지만 이제는 당 50, 인물 50으로 결정하겠다”는 답도 있었다. 이 의원과 새누리당의 향후 행보를 지켜본 뒤 지역주의 투표 여부를 정하겠다는 반응이다.



순천시청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주민은 “이번엔 나도 이정현을 찍었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보고 한 건 아니다. 당은 영남이지만 인물은 우리 호남 사람 아닌가. 게다가 정권 실세고. 예산 많이 따줄 것 같아 찍었다”고 했다. 서면 주민 정승훈(43)씨는 “2017년 대선 때 누굴 찍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때 가봐야 알 것”이라고 했다. 곡성읍 주민 박모(44)씨는 “이정현이 잘하면 또 기회가 있갔지. 근디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되는 거 하나도 없으면 담엔 국물도 없지라”고 말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여전했다. “이정현 찍었다고 박근혜당 지지하는 것 아니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조례동 주민 신경호(52)씨는 “이정현을 지지했지만 다음엔 새누리당 안 찍는다. 싹수가 없다. 박 대통령도 어디 호남 사람 중용했나. 2년 전 대선 앞두고는 탕평 운운하더니 막상 집권하곤 모른 체했다. 인사 그렇게 해놓고 우리한테 표 받아가길 바라선 안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관련해선 “밉다” “싫다”는 원색적인 답변도 많았다.



반면 어떤 당인지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답변도 있었다. 김현수(46)씨는 “예산 끌어오고, 순천 시민 자존심 세울 사람이면 누구든 괜찮다”고 했다. “이정현이 잘하면 당 색깔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정말 따지지 않게 될 것”이라는 주민도 있었다. 곡성읍에 사는 자영업자 조모(58)씨는 “속내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젠 무슨 당 좋아한다 얘기하면 서로들 거시기하게 생각한다. 당 빼고 인물 위주로만 얘기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렸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대한민국엔 지역주의 자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역주의란 기본적으로 자기 지역에 대한 문화적 공동체로 회귀하는 현상이다. 중앙으로부터 멀어지며 자치와 분리독립을 주장한다. 스페인의 바스크와 카탈루냐, 영국의 스코틀랜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언어·민족·인종 등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동질성이 강한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지역주의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지역주의 책임 유권자에만 돌려선 안 돼

한마디로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주장이다. 박 대표는 “과거엔 박정희 대통령도 호남에서 득표율이 높았다. 지역주의가 형성된 결정적 계기는 1990년 3당 합당에 의해 호남이 고립되면서부터다. 정치 구조가 조금만 바뀌면 지역주의도 쉽게 허물어진다”고 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역주의의 책임을 유권자의 ‘묻지마 투표’에만 돌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영·호남 사람이라고 별종은 아니다. 지역주의가 고착화되면서 양당이 상대 지역에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지 않았다. 반대로 자기 지역엔 누굴 꽂아도 된다는 안이함이 팽배했다. 그게 악순환이 되면서 유권자의 선택권이 사라졌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새정치연합이 대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들로선 뼈아픈 실패지만 순청·곡성 주민의 선택이 궁극적으론 국가 발전을 위해 큰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신선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지적으로 고립된 케이스로 지역주의 약화를 주장하는 건 다소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당 인사도 “지자체나 의원 선거에선 예외가 생길 수 있으나 대선에서 지역주의는 결코 약화되지 않는다. 철저한 제로섬 게임인 양당 체제에선 지역주의는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도 “울산 북구는 공단지대임에도 새누리당 후보가 연속 당선됐다. 진보정당보다는 경상도 정당을 지지한다는 거다. 소선구제에서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작동하는 한, 우리 지역 정당 후보를 뽑겠다는 지역주의는 공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단과 전망은 어긋났지만 해법은 엇비슷했다. 지역주의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대부분 전문가들은 ‘양당 구조의 해체’를 꼽았다.



박상훈 대표는 “대한민국 유권자가 향토의식에 절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이념·취향·욕구·계층 등 모든 분야에서 다원화돼 있다. 근데 정치 구조만 획일적이다. 현재 한국 정당은 여든 야든 중도우파의 성향을 띤다. 이념적으로 변별력이 없으니 지역적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일 뿐”이라는 진단이다. “지역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 정치적 지평을 넓혀주면 된다. 최소한 현재 양당의 이념적 차별점을 분명히 하거나, 아니면 녹색·진보·중도 정당 등 사회적 다원성이 마련되면 지역주의 문제도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다.



지역주의 피해자가 매듭 끊어 의미 각별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당선되고 새정치연합이 영남에서 당선되는 게 지역주의 해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3의 정치세력이 출현해야 완성될 수 있다. 기호 순번제부터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지역주의는 영·호남에서 동시에 만연했지만 영남을 패권적 지역주의로, 호남을 저항적 지역주의로 구별하곤 했다. 한상진 교수는 “이번 순천-곡성 선거는 지역주의의 피해자가 스스로 지역주의의 매듭을 끊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고 평가했다.



최태욱 교수는 “최근 울산·부산·경남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은 이미 40%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 중이나 실제 의석 수는 2~3석에 불과하다.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해야 지역주의가 희석된다”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순천·곡성=박종화·황은하 인턴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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