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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개표 보며 "나 떨려" 문자 보낸 사연

중앙일보 2014.08.01 13:22


-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 “형, 기적이 일어나겠어.”

- 이정현 순천-곡성 새누리당 후보= “나 떨려.”



지난달 30일 오후 9시52분. 그 날 치러진 7ㆍ30 재보선의 개표 진행상황을 지켜보던 당시 윤 총장은(그는 지난달 31일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사표를 냈다)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한 이정현 후보와 이런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이 후보는 개표 초반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크게 앞서 나갔다. 자신의 고향인 곡성의 투표함을 먼저 개표한 것도 한 이유였다.

곡성은 재보선으로는 유례없이 높은 61.1%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그 중 70.1%를 고향 사람 이정현에게 몰아줬다.



개표 초반엔 “순천을 열어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서 나왔다. 그런데 막상 순천에서도 이 후보는 지지 않았다. 개표 2시간여가 흐른 즈음엔 이미 이 후보가 완전히 승기를 잡았다.



이번 재보선을 책임지고 이끌었던 윤 총장은 스스로도 믿기가 어려웠다. 수 차례에 걸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가 앞서 나갔지만 당선가능성 조사에선 서 후보에 한참 뒤졌다. 투표 당일 이 지역의 지인들이 “일 나겠다”며 이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전해왔지만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후보는 서 후보에게 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후보에게 “기적이 일어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후보는 “떨린다”고 답했다. 이어 윤 전 총장은 “대장이 놀라시겠어”라는 문자를 날렸다. 여기서 대장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킨다.



이 후보와 윤 전 총장은 2004년부터 10년 이상 박 대통령 곁을 지킨 친박 핵심이다. 두 사람 모두 2007년 대선 때 함께 고생했고 2012년엔 캠프의 중책을 맡아 대선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끼리 모인 사석에선 박 대통령을 ‘대장’이라 부르곤 했다.



실제 이번 선거에서 이 후보가 승리한 데에는 윤 전 총장의 역할이 컸다. 둘은 처음부터 순천-곡성의 선거판을 함께 짜고 들어갔다. 이 후보는 “절대 당이 지역에 와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택한 전략이 바로 ‘외곽 때리기’였다



그 중 첫번째가 윤 전 총장이 총대를 메고 움직인 ‘권은희 때리기’다. 새정치연합이 광주 광산을에 권 후보를 공천하자 윤 전 총장은 연일 공천의 부당함과 권 후보의 각종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이번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호남에서 대체로 20% 가량의 득표율을 기록한 것도 이런 전략 덕이다. 순천-곡성에서 더 먹혀 들어간 건 말할 것도 없다.



또 다른 외곽 때리기는 이 지역에서 공당 조직이 아닌 저변의 이정현 지지세력을 확보한 것이다. 당 지도부가 호남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진 않았지만 윤 전 총장은 비공식적으로 선거 기간 이 지역을 몇차례 찾았다. 그리고 평소 친분이 있던 지역 명망가들을 만나 “새누리당이란 생각을 하지 말고 사람만 보고 이정현을 한번 밀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과정에서 폭탄주도 여러 잔 마셨다. 일부 지역 인사들은 윤 전 총장의 노력에 호응하며 러브샷도 수 차례 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두 ‘왕(박 대통령)의 남자’들의 우정이 호남에서 기적을 일궈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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