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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신문 보기-1988년 9월 10일 1면] 88 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기억하십니까

중앙일보 2014.07.31 15:31


































“왜 이렇게 조용하지? 사고인가?”



10만 명이 들어찬 경기장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느닷없는 고요에 사람들은 술렁였다. 행사에 실수가 생겼나. 모든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던 그때, 경기장 모퉁이에 작은 소년이 들어섰다.



빨강과 파랑이 한데 어울린 티셔츠에 흰색 모자를 눌러쓴 소년은 관중석을 올려다보며 달려나갔다. 소년의 손은 굴렁쇠를 잡고 있었다. 은색 원이 푸른 잔디 위에서 반짝이는 모습을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손으로 입을 가린 관중들. 소년은 딱 한번 비틀했을 뿐 중앙까지 무사히 달렸다. 멈춰 선 소년은 굴렁쇠를 탁 잡고 어깨에 걸더니 애태운 관중을 향해 귀엽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1988년 9월 17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 ‘세계평화와 화합’을 기치로 내세운 88년 서울올림픽은 그렇게 벅찬 감동으로 시작됐다. 굴렁쇠 소년은 현장 관중은 물론 TV로 개막식을 시청한 전 세계인의 가슴에 강력한 이미지를 심었다. 전 세계 50억 인구의 소망을 담은 굴렁쇠는 그렇게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연결됐다.



88서울올림픽에서 전 세계를 감동시킨 드라마는 또 있다. 당시 올림픽 경기 최대의 관심은 여자 핸드볼이었다.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9월 29일 수원 실내체육관. 한국 대 소련의 결승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유고에 져 1패를 안고 결승에 올랐기 때문에 우승 가능성이 낮았다. 그러나 경기 직전 노르웨이가 유고를 이기는 바람에 다시 소련을 이기면 우승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처음엔 한국이 우세를 보였다. 전반 13대 11. 하지만 소련에 연이어 5골을 내주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평균 신장 10cm가 큰 소련을 이기기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8000여 명의 관중은 목이 터져라 “코리아”를 응원했다. 최종 스코어 21대 19. 승리를 알리는 버저가 울리자 선수들은 그대로 코트에 엎드려 울었다. 코칭스태프도 함께 울었다. 그 순간 전국의 가정에서는 “이겼다”는 함성이 울려퍼졌다. 한국 구기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거머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소련과 동독, 미국에 이은 대기록이었다. 전 세계 언론은 한국의 스포츠 실력뿐 아니라 발전된 기술과 고유문화 등과 관련해 대서특필했다. 서방세계에 뿌리 깊게 박혀있던 ‘6.25전쟁으로 얼룩진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올림픽을 통해 크게 반전됐다.



88올림픽은 다른 나라에도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소련에게는 ‘소비에트 연방’ 이름으로 참가한 마지막 올림픽이 됐다. 소련은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여러 개 나라로 분열됐다. 동서독과 남북 예멘은 각각 다른 나라로 참가했지만 이후 통일을 이뤘다. 88올림픽의 ‘화합’의 가치가 통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북한은 참가하지 않았다. ‘벽을 넘어서’, ‘손에 손잡고’ 세계평화를 제창한 서울올림픽이었지만 정작 제 국토의 화합은 일궈내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2014년 7월. 서른세 살의 건장한 청년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분주히 행사를 준비 중이다. 50억 인구의 가슴을 떨리게 했던 굴렁쇠 소년 윤태웅(33)씨다. 경기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모델로 활동하며 tvN ‘롤러코스터’와 각종 공연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5년 전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 연평도편에 우연히 출연하게 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씨는 다음달 16일 교황이 광화문에서 집전할 순교자 시복식에 참가하는 봉사단체의 청년리더 역할을 맡았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그가 또 어떤 감동을 이끌어낼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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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jw8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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