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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낡은 자전거 한 대로 지역주의 철옹성 넘다

중앙일보 2014.07.31 02:24 종합 2면 지면보기



순천-곡성서 3번째 호남 도전 성공
지역 조직도, 중앙당 지원도 없이
새벽 3시30분부터 나홀로 유세
17대 총선 1% … 이번엔 49% 득표
"내가 잘나서 아니라 기회 주신 것"































“떨렸다. 봉급다운 봉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에겐 그야말로 큰 유혹이었다. 그때 전화기를 잡고는 ‘거절 못 하면 박근혜 전 대표와 영영 헤어져야 한다’며 흔들리지 말자고 기도했다.”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후보)의 공보특보로 활동했다. 경선 직후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가 그에게 정무부지사 직을 내밀었다. 그는 흔들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고사했다. 며칠 뒤 박 대통령이 그를 불렀다. “왜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자꾸 그러시면 정치 그만 둘라요”라고 해 버렸다. 박 대통령은 웃음 띤 얼굴로 “고맙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그의 부친은 “잘 혔다. 나는 니가 내가 존경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을 가까이서 모시는 것만으로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그렇게 세상이 모두 아는 ‘박근혜맨’이 되었다. 그와 박 대통령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간다. 17대 총선 당시 광주에 출마한 그에게 당 대표이던 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전화를 해 격려했다. 선거가 끝나면 밥을 사겠다고도 했다. 약속대로 박 대통령은 총선 뒤 낙선한 후보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여기서 이 후보는 “당이 호남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 대통령은 “어쩜 그리 말을 잘하세요”라고 감탄했다. 며칠 뒤 박 대통령은 그를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임명했다. 그는 박 대통령 곁을 10년간 지켰고, 2012년 대선 직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지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에서 나경원 후보의 당선 소식을 듣고 박수를 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15곳 가운데 11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왼쪽부터 윤상현 사무총장, 이인제 최고위원,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김을동 최고위원. [김경빈 기자]




 그는 이번 재·보선에서 자신의 꿈인 ‘호남의 새누리당 의원’을 실현하기 위해 세 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마침내 그 꿈은 이뤄졌다. 정치권에선 ‘기적’이란 얘기가 나왔다. 새누리당이 전신을 포함해 호남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건 1996년 15대 총선 때 전북 군산을의 신한국당 강현욱 전 의원 이래 18년 만이다. 이 후보의 17대 총선 득표율이 1%였던 것을 떠올리면 혁명적 발전이다. 이날 순천-곡성의 투표율은 51.0%였다. 웬만한 총선 투표율에 육박했다. 이 후보가 지역주의를 넘어 호남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투표율로 이어진 거다. 상대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인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라서 대립각은 더 뚜렷했다.



 이 후보는 49.3%를 득표했다. 고향인 곡성에서 몰표가 나왔고 서 후보의 출신지인 순천에서도 앞섰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일단 기회를 한번 주신 걸로 알고 있다”며 “순천 시민과 곡성 군민이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 후보 선거전의 일등공신은 박 대통령도, 중앙당도 아닌 낡은 자전거 한 대였다. 그는 선거 내내 허름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홀로 유세’에 나섰다. 시 의원 출마를 포함한 3번의 과거 도전에서 “지역 조직보다는 밑바닥 민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택시·버스 기사와 환경미화원의 손을 잡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2년 동안 머슴처럼 쓰고, 쓰레기통에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그 호소는 먹혀들었다.



  이가영·정종문 기자

[사진 뉴스1,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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