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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구한 건 해경·선원 아닌 친구"

중앙일보 2014.07.29 02:15 종합 1면 지면보기
세월호 침몰 당시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에 대한 증인 신문이 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증인으로 나선 여학생 6명 중 5명은 1명씩 친구나 선생님의 손을 잡고 법정 안에서 증언했고, 1명은 법정에 설치된 TV 화면을 통해 화상 진술을 했다. 현장에서 취재한 기자의 묘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그림.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친구들과 복도에 줄을 서서 구조를 기다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해경이 있었다. 해경은 나오라고도 하지 않고 배에 오르지도 않았다. 구조 전문가인 그들을 믿었는데….”

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 6명 첫 법정 증언
"손 닿을 곳 있던 해경, 구조하러 안 들어와
승객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 엄벌해 달라"



 세월호에서 구조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증언이다. 28일 오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임정엽) 심리로 열린 생존 학생 증인 신문에서다. 단원고 학생들이 사고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는 처음이다.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승무원 15명에 대한 공판을 진행 중인 재판부는 이날 안산을 찾았다. 학생들이 사고 후유증으로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점을 고려했다. 증인 신문에는 여학생 6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해경이나 선원 누구도 탈출을 돕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도와주거나 빨리 탈출하라고 했으면 더 많이 살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대부분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승무원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사고 순간을 자세히 전했다. 대부분 사고 당일 아침식사를 하고 객실로 돌아와 잠을 자거나 쉬고 있었다. 갑자기 배가 기울어 캐비닛에 넣어 둔 짐가방이 몽땅 쏟아졌다. 배가 너무 기울어 ‘침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들끼리 구명조끼를 꺼내 입었다. ‘구명조끼를 입어라’ ‘특히 단원고 학생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방송이 반복해 나왔다. O양은 “선장이나 선원들이 더 (위급 상황에 대한) 지식이 많으니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선실에서 기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움을 준 어른은 없었다. 깨진 창문으로 바닷물이 급격히 차오르자 친구들끼리 도와 탈출할 수 있었다. 서로 받쳐 주고 끌어올려 주며 선실에서 빠져나왔다. 1개 반(30여 명) 정도의 인원이 비상구 방향으로 가 대기했다. O양은 “‘나 살겠다’고 먼저 뛰쳐나간 친구는 없었다”며 “비상구 바깥으로 해경이 보여 안도하면서 줄을 서서 나갔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해경 구명보트로 옮겨 탄 뒤 큰 파도가 쳤다. 그 물결에 배에 남아 있던 10여 명의 친구가 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고 다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해경이 세월호 선미 끝 비상구 앞에서 손만 뻗어 닿을 거리에 있는데 왜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건지’라며 친구들끼리 얘기했다. 해경 구명보트 2대가 학생들이 배에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구조된 이후 해경에 “배에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알렸다. 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선실 캐비닛이 에어포켓(air pocket) 역할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학생들은 “ 물이 차자 겁이 나서 캐비닛 아래 침구류를 놓는 공간에 몸을 둥글게 말아 숨었다. 물이 더 차오르면서 캐비닛은 뒤집혔고 학생들은 그 안에 갇혔다. K양은 “뒤집히는 바람에 캐비닛 안 공간에 공기가 차 숨을 고르며 탈출할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안산=임명수·윤호진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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