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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도야마에서 온 일본인 독자의 편지

중앙일보 2014.07.29 00:43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승욱
도쿄 특파원
지난겨울 도쿄 도요스(豊洲) 소재 대형 쇼핑몰의 레스토랑, 옆 테이블의 손님이 식사를 끝내고 외투를 입으려는 자신의 유치원생 딸에게 속삭였다. “여기서 입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또 잊어버렸구나.” 외투를 입다 옆 테이블의 접시라도 건드리면 폐가 되니 식당 밖으로 나가서 입으라는 것이다. 일본 부모들의 엄격함이다.



 지난해 가을엔 아내가 수도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혹시 가족이 늘었습니까. 수도가 새는 것은 아닙니까”라는 질문이었다. 친척의 장기체류로 수돗물 소비가 늘어나자 혹시 다른 문제가 없는지 체크에 나선 것이다. 일본 사회 전체의 촘촘함과 꼼꼼함이 느껴졌다.



 손님이 잔돈을 잘못 계산해 내더라도 마치 자기의 잘못인 듯 미안해하는 편의점 점원들, 휴대전화 소음이 없는 지하철과 전철 속 풍경….



 특파원 임기 3년간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게 된 것은 두 달 전 사무실에 도착한 일본인 독자의 편지 때문이다.



 또박또박 한글로 쓴 편지였다. ‘지방 도시 도야마(富山)에 사는 평범한 주부’라는 그는 한국 여행만 40번 넘게 한 한국 매니어였다.



 중앙일보 일본어판 애독자라는 그가 문제 삼은 건 세월호 참사 때 썼던 ‘이웃의 비극, 위로는커녕 비야냥’이란 칼럼이다. 혐한 서적 전문 작가를 ‘한국 전문가’라며 토론회에 초청하는 일본의 방송사, “한국은 뇌물이 윤활유인 나라”라며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우익 패널을 비판한 칼럼이었다. 하지만 도야마의 독자는 “양국 국민 사이엔 선거밖에 모르는 정치인들과 어리석은 언론이 있어 저속한 애국심을 부추겨 댄다”고 칼럼을 비판했다. 그러곤 “일본인도 납득시키는 기사를 쓰라”고 했다. 싸구려 애국심이나 파는 기자로 낙인찍혔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친한파 독자의 지적은 특파원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정말 일본의 장점은 묻어두고 치부만 들춰내기에 바빴는지 말이다.



 변명 같지만 지난 3년간 한·일 관계는 최악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그 반작용으로 일본 사회의 반한 감정이 폭발했다. 그 바람을 타고 완전히 한물갔던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자민당 총재로 복귀했고 재집권했다. 그 이후 한·일 관계에 출구는 없었다.



 특파원 임기 절반을 지배한 것도 ‘아베’와 ‘아베의 일본’이었다. 아베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때로는 타사의 ‘무조건 일본 때리기’ 풍조에 휩쓸려 대안이나 전략 제시에 소홀했던 적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아베의 일본’ ‘한국을 혐오하는 일본’이 일본의 전부가 아니지만 그렇게 느꼈을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도야마 주부 독자에게 100% ‘노(NO)’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일 관계 회복의 길은 아마도 ‘묻지마 비판’을 넘어선 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오늘, 홀가분하기는커녕 더 큰 숙제를 등에 이고 떠나는 느낌이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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