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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그날의 다짐 어디로 가고

중앙일보 2014.07.29 00:39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동아일보가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나라를 사람으로 형상화하면 어떤 모습일지 그림으로 그려 본 것이다(7월 28일자 4면).



동아일보는 한국 등 몇몇 국가의 각종 경제·사회적 지표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와 비교한 결과를 인체의 각 부분에 대입했다. 예를 들어 인체의 머리에 해당하는 사회지도층의 리더십은 OECD 평균치를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71.1이었다. 정부 신뢰도, 정치인 신뢰도, 경영자 신뢰도, 기업인들의 사회적 책임감 등 사회지도층의 리더십과 관련된 지표를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다. 당연히 한국의 머리는 ‘조두(鳥頭)’ 수준으로 작게 그려졌다.



 한국의 사회적 자본(가슴)은 85.5, 삶의 질(배)은 64, 민간 부문 효율성(오른팔)은 83.4. 공공 부문 효율성(왼팔)은 78.8로 계산됐다. 경제 성장(오른쪽 다리)은 77.6, 분배와 복지(왼쪽 다리)는 76.9로 나타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부위가 평균치 미달이다. 이를 토대로 사람 모양을 그려 보니 영 부실한 체형이 됐다. 전체적으로 삐쩍 마른 데다 사지는 가냘프다. 가슴은 빈약하고, 배는 홀쭉하다. 다리가 부실해 오래 달릴 수 없고,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다. 무엇보다 두뇌 용량이 작으니 상황 판단과 위기 대처능력이 떨어진다.



 미국이나 독일·프랑스·일본 등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보다 훨씬 건강하고 균형 잡힌 체형이다. 가장 부러운 몸을 가진 나라는 독일이다. 어깨는 딱 벌어져 있고, 두 다리는 튼실하다. 두 팔에는 힘이 느껴진다. 머리는 크고, 배에는 윤기가 흐른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약골이다.



 세월호 참사로 한국의 빈약한 체구는 맨얼굴을 드러냈다. 모든 신체 기관이 비정상적으로 작고 부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상적인 체형을 가졌다면 사고 자체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설사 일어났다고 해도 그처럼 무기력하게 대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고 발생 약 한 달 만인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고 국가 개조를 다짐한 것도 한국 사회의 이런 기형적 몸매를 바꾸지 않으면 세월호 사고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절실한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고 있는 꼴을 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밝혔던 그날의 각오와 다짐은 어느새 다 잊혀진 듯하다. 뼈를 깎는 자책과 반성의 토대 위에서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뭔가 바꿀 것 같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정치권의 지루한 말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벌이고 있는 공방을 보고 있으면 짜증을 넘어 울화가 치민다. 도대체 수사권이 뭐라고, 이 문제로 이토록 싸운단 말인가.



 대통령이 나서서 “나와 청와대부터 조사를 받을 테니 수사권 논란은 이쯤에서 그만두시라”고 했다면 진작 끝날 수도 있는 일 아닐까. 청와대는 여당 뒤에 숨고, 여당은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정신이 없다. 야당은 야당대로 청와대 흠집 낼 궁리만 하고 있다. 미국의 9·11테러 조사위원회는 수사권을 발동하지 않고도 전·현직 대통령과 백악관팀을 조사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다 되도록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 산이라도 옮길 것처럼 기세등등했지만 다 말뿐이었다. 100% 대한민국, 국민행복시대는 말풍선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이것저것 찔러보다 아까운 시간만 허비한 꼴이다. 이도 저도 안 되니 지금은 ‘경제 살리기’로 표적을 바꿔 총력전을 펴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신체 부위가 다 문제지만 그래도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머리다. 머리가 모자라면 팔다리가 고생하게 돼 있다. 국가 개조든 국가 혁신이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역시 머리부터 바꾸는 일이다. 그것은 리더십의 대혁신이다.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바뀌지 않으면 국가 혁신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야 대표들을 만나고, 보고서에 의존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장관들과 직접 소통하는 노력도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아직 멀었다. 진정으로 머리가 바뀌려면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총리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그들과 호흡을 맞춰 국정을 함께 운영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세 명 중 한 명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오바마가 맘에 안 든다는 것이다. 지난주 오바마의 지지율은 41%를 기록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0%까지 떨어졌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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