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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트인 곳서 추위에 떨다 숨졌다고 보기엔 의문점 많아

중앙선데이 2014.07.26 23:33 385호 3면 지면보기
지난 23일 경찰이 유병언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뒤늦게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6월 12일 전남 순천의 야산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40일 만인 22일 유 회장으로 확인됐다. [뉴시스]
시신은 유병언(73) 청해진해운 회장의 것이 틀림없지만 사인은 알 수 없다는 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25일 내놓은 정밀감식의 결과다. 국과수는 원장이 직접 발표하고, 시신 상태를 사진 등으로 소상히 공개하고, 민간 법의학 전문가들이 의견을 밝히는 기회까지 마련하는 등 극히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 줬다. 서중석 원장은 “국민적 의혹 해소와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 회복, 나아가서는 사회통합의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유 회장의 시신이 맞고, 부패한 그 시신에서는 죽음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 달라는 호소였다.

국과수 발표 뒤에도 계속되는 유병언 사망 미스터리

박종철 사망 폭로 교수 “국과수 신뢰”
국과수 발표 직후 국내 법의학의 대가 황적준(67) 고려대 명예교수는 전화통화에서 “발표 내용을 믿는 게 옳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한 것도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 치사사건 때 권력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소견서를 썼고, 이후 경찰이 ‘쇼크사’라고 거짓 주장을 펼치자 언론에 자신이 냈던 소견 내용을 폭로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국과수 과장이었다. 황 명예교수는 “시신 상태나 자료를 직접 본 것은 아니어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후배들이 일을 잘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전문가가 100%라고 했으면 언론과 일반인이 신뢰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법의학계에서는 대체로 국과수의 감식 결과를 신뢰하는 분위기다. 현재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됐다고 보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제 사인은 유 회장의 행적과 현장의 단서를 확인하는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사망 원인은 크게 자연사·자살·타살의 세 가지가 있다. 국과수 발표 현장에서 강신몽 가톨릭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저체온사에 아주 합당한 현장의 모습”이라며 자연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시신이 발견된 순천 야산 매실밭에서 추위에 떨다 숨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도주 중인 수배자가 사방이 훤히 트인 장소에 있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1991년 검찰의 오대양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상습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 유병언 회장. [중앙포토]
범죄심리분석가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시신 발견 다음 날 현장에 다녀왔다. 누구나 직접 가서 보면 그곳에 유 회장이 머물렀다고 생각하기 힘들 것이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민가에서 2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게다가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서 장시간 지내는 것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20여 년간 형사 생활을 한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도 “통상 수배자가 야산에 숨을 경우에는 큰 바위나 나무 밑에 몸을 감춘다. 이번처럼 개활지 같은 곳에서 발견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시신 놓인 자리 누군가 다져 놓은 모양
배 교수는 “현재로선 자살이든 타살이든 다른 장소에서 사망했고, 누군가가 시신을 그 자리에 옮겨다 놓았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현장에서 발견된 알코올 성분이 남아 있는 소주병, 누군가 미리 다져 놓은 것처럼 보이는 시신이 놓인 자리는 그곳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타살설은 유 회장이 사망하면 경제적 이득을 볼 주변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도 힘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력 자살’도 언급한다. 도피 생활에 지친 유 회장이 측근의 힘을 빌려 목숨을 끊었고, 쉽게 발견될 만한 장소에 그 측근이 시신을 옮겨 놓았다는 가정이다. 국과수 감식에서 목뼈 연골 골절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교살 가능성은 작아졌지만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한 경찰관은 “목을 조르는 것 외에도 질식사에 이르게 하는 방법은 꽤 있다”고 말했다.

조력 자살은 27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오대양 사건’에 등장했다. 오대양은 구원파에서 갈라져 나간 종교집단이었다. 87년 8월 경기도 용인시의 오대양 공장 식당 천장 위 공간에서 32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29구에서는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됐고, 나머지 3구는 목에 끈이 매여 있었다. 그중 2구는 바닥에 눕혀져 있었고, 한 구만 지붕에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당시 수사팀은 그 3명이 29명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차례로 자살한 것으로 엽기사건의 전말을 추리했다. 29명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오대양 집단이 채무상환 압박에 시달리다 집단자살했다는 것이 수사의 결론이었다. 오대양 사건 때 ㈜세모의 사장이었던 유 회장은 모종의 관련성이 있을 것이란 의심을 받았다. 그가 전두환 정권 핵심 인물의 비호를 받고 있어 수사가 축소·은폐됐다는 의혹도 일었다.

유병언 연계된 이상한 죽음 반복
수년 뒤 유 회장은 다시 엽기 살인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91년 7월 오대양 소속이었다는 남성 6명이 집단자살 사건 이전에 동료 4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시신 발굴로 암매장은 사실로 밝혀졌으나 자수 동기는 불분명했다. 유 회장은 검찰의 오대양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구원파 신도들에게서 헌금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한 혐의(상습사기)로 구속돼 4년간 수감됐다.

32구의 변사체 발견, 4구의 시신 암매장과 석연치 않은 집단자수, 야산에서 부패된 상태의 시신 발견…. 지난 27년간 유 회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죽음의 미스터리들이다. 검찰은 유 회장의 도피를 도왔던 측근들을 붙잡아 이번 사건만큼은 반드시 진실을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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