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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65돌 공항세관에 비친 한국 사회상

중앙일보 2014.07.26 01:57 종합 10면 지면보기
환금성이 좋은 금은 밀수 인기 품목이다. 2008년 해외로 밀반출하려다 인천공항세관에 적발된 당시 시가 27억원 상당의 금괴. 흰색 금괴는 은 도금을 해 위장한 것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2005년 국내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금 옷걸이’. 고무 재질로 감싸 위장했다. [중앙포토]


지난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층 입국장 앞 세관 검사대.

마개 딴 양주 → 코끼리밥통 → 골프채 → 명품백 '반입품 진화' …
면세한도 18년째 400달러 중국 절반



 “고가품이라 세금이 많습니다. 관세 외에 개별소비세와 교육세가 붙어요. 세금을 합산한 총금액에 부가가치세가 추가되고요.”



 세관 직원 설명을 듣던 30대 여성 전모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출국 전 서울시내 면세점에서 2750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80만원)짜리 명품 핸드백을 샀다. 당연히 해외여행 면세한도(400달러) 초과다. ‘혹시’하는 심정으로 귀국 짐에 그대로 넣어왔는데 ‘여지없이’ 세관 직원에게 잡혔다. 한데 생각보다 세금명세서가 길었다.



 상품값에서 면세한도를 뺀 금액(약 240만원)이 과세가격이라고 했다. 여기에 ▶관세(과세가격×8%) 약 19만원 ▶개별소비세({(과세가격+관세)-200만원}×20%) 약 12만원 ▶교육세(개별소비세×30%) 약 4만원 ▶부가세((과세가격+관세+개별소비세+교육세)×10%) 약 28만원이 붙었다. 총 60만원이 넘는다. 그나마 짐가방을 열기 전 "신고할 게 있다”고 실토를 한 덕에 가산세(30%)는 피했다. 세관 직원은 “개별소비세는 지난해까지 귀금속·시계에만 부가됐는데 올 1월 법이 개정돼 가방·지갑도 대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세율은 백화점 물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지만 백화점은 면세점보다 임대료가 싸고 상품을 대량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과세가격이 싸고 세금도 적게 붙을 수 있다. 세금을 제대로 낸다면 면세점에서 사는 게 백화점에서 살 때보다 더 비싸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여행기간 내내 자신이 직접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수고비’는 별도다.



 전씨는 무인수납기에서 신용카드로 63만여원 세금을 낸 뒤 씁쓸한 표정으로 입국장을 빠져나갔다. 여름 휴가철을 맞은 요즘, 인천공항 입국장에선 흔히 보게 되는 광경이다.



65세 생일 맞은 공항세관





 여행객과 세관원들의 이런 ‘세금 숨바꼭질’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지난 9일 인천공항세관은 개청(開廳) 65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인천공항은 2001년 문을 열었지만 공항세관의 뿌리는 1949년 7월 9일 문을 연 서울세관 김포출장소”라는 설명이었다.



김포공항은 일제시대 군 비행장으로 출발했다. 58년 대통령령에 의해 민간 국제공항이 됐지만 당시 국제선은 일주일에 2~3편에 불과했고 여행객 대부분은 미군이었다. 세관 사람들은 “미군 짐 보따리를 뒤지는 게 공항세관 업무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여객과 화물이 늘며 김포세관은 67년 독립 세관이 됐다. 체계적인 여행객 통관 절차가 마련된 것도 이 무렵이다. 60년대까지 휴대품 검사는 구두(口頭)신고제였다. 모든 여행객이 세관 직원과 얼굴을 맞대고 1대 1 신고를 해야 했다. 검사대도 내·외국인 구별 없이 임의로 배정됐다. 그러다 보니 통관시간이 오래 걸리고 여행객과 세관원 사이에 다툼이 잦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71년 관세신고서제가 처음 도입됐다. 검사대도 그린(외국인 가운데 과세 물건이 없는 사람)·오렌지(외국인 중 과세 물건 소지자)·레드(내국인)로 나뉘었다. 오렌지·레드 검사대 이용자는 휴대품을 전량 검사받았지만 그린검사대 이용자는 대부분 ‘무사통과’였다.



 통관제도는 88년 서울올림픽과 이듬해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를 계기로 또 한번 바뀐다.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어 이전처럼 휴대품 전량검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는 신고할 물건이 있는 사람만 짐 검사를 받는 자진신고제가 기본이 됐다.



2001년 인천공항이 개항하며 세관은 인천 영종도로 본부를 옮겼다. 김포세관은 출장소가 됐다가 2003년 김포~일본 하네다 간 국제선이 복항되며 인천공항세관 산하 세관으로 승격됐다.



요즘 인천공항에선 전체 여행자의 3% 정도만 휴대품 검사를 받는다. 승객정보사전확인시스템(APIS)의 감시대상으로 분류됐거나 밀수 우범자, 항공사 위탁수화물 X레이 검사에서 의심스러운 물건이 발견된 사람 등이다. “가능하면 여행객들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정보 분석을 통해 우범자만 잡아내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세관’을 지향하고 있다”는 게 세관 사람들 얘기다.



70년대 암시장 유출 우려 마개 딴 술만 면세





 나라의 관문인 국제공항은 흔히 그 나라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65년간의 공항 입국장 풍경에는 당시의 사회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령 70년대만 해도 내·외국인의 면세한도가 달랐다. 70년대 초 외국인은 술을 2병까지 가져올 수 있었지만 내국인은 병 마개를 딴 경우에만 면세 인정을 받았다. 암시장에 양주가 나도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담배도 외국인은 400본, 내국인은 100본(궐련 기준)까지로 차이가 났다. 관광 진흥과 외화 획득을 위해 외국인에게 특혜를 준 것이다. 79년에는 내국인 주류반입 한도가 1병으로 줄고 대신 일반상품 면세 한도가 ‘감정가격 3만원 이상’에서 ‘최대 10만원까지’로 늘었다. 이 같은 내·외국인의 면세한도 차별은 80년대 들어 사라졌다.



현재 면세한도(주류 1L 1병, 일반 상품 400달러 이하)는 96년 정해진 기준이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그간 국가경제가 성장한 것과 비교해 기준이 너무 낮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일본의 경우 술은 도수에 상관없이 3병, 일반 면세한도는 20만 엔(약 203만원)까지다. 중국은 술은 주정 12도 이상 1.5L, 다른 물건은 자국 거주자의 경우 5000위안(약 83만원)까지만 면세 혜택을 주고 있다.



 여행객들이 해외에서 사오는 물건도 시대에 따라 변했다. 2000년 발간된 『관세청 30년사』에 따르면 70년대에는 생활용품이 대부분이었다. ‘초이스 커피’와 ‘코티 분’이 당시 최고의 선물 대접을 받았다. 중동 건설현장에서 ‘오일 달러’를 번 건설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손이 컸다. 조준 전 김포세관장은 “79년 한 해 입국한 중동취업자가 8만3368명이었는데, 휴대 반입한 일제 카메라가 7만6698대 시가 약 115억원어치, 카세트 테이프 리코더가 5만8470대 약 117억원어치였다”고 회고했다. 당시 정부에선 해외취업자 사기진작 차원에서 개당 200달러 미만 제품 1개에 한해 별도의 면세 혜택을 줬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80년대에는 일반인들도 앞다퉈 전자제품을 사왔다. 일본산 ‘코끼리 밥통’이 가장 인기였다. 90년대 이후에는 골프채·모피 등을 들여오는 사람이 생겼다.



 87~2000년 김포세관에서 일했던 인천공항세관 휴대품통관국 김남주 과장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이 세계적 수준에 오른 뒤에는 전자제품을 사오는 사람이 급감했다”며 “여행객 휴대품만 비교해 봐도 그간 우리나라 경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축구 대표팀에서 외교관까지



 어떻게든 세금을 안 내보려는 사람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세관에 따르면 60년대에는 나일론 직물, 의약품 등 생필품, 70년대에는 보석·시계·가전제품 밀수가 많았다. 80년대에는 모피류, 90년대에는 귀금속·마약류 밀반입이 늘었다.



개중에는 나라를 발칵 뒤집은 대형 밀수사건도 종종 있었다. 62년 인도네시아 초청으로 동남아 원정경기를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귀국한 축구 국가대표팀 짐가방에선 다이아몬드 반지·손목시계·화장품 등이 쏟아졌다. 선수 6명이 현장에서 연행돼 법정에 섰다.



72년에는 홍콩 보석상이 경찰관 3명과 대한항공 조종사를 매수해 총 27회에 걸쳐 금괴와 보석류 3억6000만원 상당을 밀수한 사건이 터졌다. 이전까지 소지품 검사를 받지 않던 경찰관들은 이 사건 이후 일반인과 똑같이 검사를 받게 됐다. 83년에는 중남미·동남아 국가의 일부 외교관들이 금괴·롤렉스 손목시계 등을 밀수하려다 적발됐다. 이들은 외국인 브로커에게 사례금을 받는 조건으로 ‘배달 심부름’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은 명품류가 선호 1순위다. 인천공항세관은 지난해 면세범위를 초과한 휴대품을 자진신고하지 않은 여행객 6만483명에게 가산세를 물렸다. 2012년(8만9907명)보다 33% 줄어든 규모다. 하지만 거둬들인 세액은 76%(총 20억8200만원)가 증가했다. 핸드백·시계 등 값비싼 명품이 적발된 경우가 8만1612건으로 전년보다 32%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 밀반입이 많았던 주류는 3만7825건, 의약품은 4만1917건으로 전년 대비 각각 38%, 3%가 줄었다.



인천공항=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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