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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꿈꾸던 문학도, 소비자 마음을 화장하다

중앙일보 2014.07.26 01:54 종합 12면 지면보기
스물셋의 나이에 유토피아를 꿈꾸며 회사를 세운 올리비에 보송 록시땅 창립자는 한때 경영난을 겪었지만 전문경영인의 도움으로 자신의 철학을 지켜냈다. 보송의 표정이 그의 인생 역정과 닮았다. [사진 록시땅]


프랑스 자연주의 화장품 ‘록시땅’의 출발은 1976년 스물세 살의 청년이던 올리비에 보송(Olivier Baussan)이 마르세유의 조그만 비누공장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문학을 전공한 그는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인한 아프리카의 기아와 환경 파괴 등을 목도하며 모두가 잘사는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이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 공화국에서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시어버터를 발견한 그는 80년부터 이 지역과 공정거래 무역을 시작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갔다.

[CEO 라운지] 프랑스 '록시땅' 창립자 보송



 하지만 경영에는 소질이 없었다.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았지만 자본이 잠식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타난 사람이 현재의 최고경영자(CEO)인 레이놀드 가이거다. MBA 출신인 가이거는 보송의 ‘철학’에서 성공 가능성을 봤다. 가이거는 94년부터 캐피털의 지분을 사들여 96년 록시땅의 CEO가 됐다. ‘주판알’로부터 자유로워진 보송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공헌 사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철학을 구현해 나갔다.



 현재 록시땅은 92개국 2300여 개(지난해 말 기준)의 매장을 가진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DNA로 삼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서 영감을 받은 크리스마스용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그를 만났다. 고흐가 그린 그림,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됐던 카페 골목에서였다.



 -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는.



크리스티앙 라크루아의 사진전에 참석한 보송이 아를의 전통 복식을 한 여성들과 포즈를 취했다.
 “공존과 연대의식이 록시땅의 브랜드 철학이기 때문이다. 점자 표기를 한 용기에는 소수층과 약자를 존중하는 록시땅의 철학이 담겨 있다. 시각장애인도 우리와 함께 공존하며, 이들도 함께 우리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정거래 무역을 통한 부르키나파소 공화국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일 역시 ‘우리가 그들의 시어버터로 이윤을 얻는 만큼 그들도 당연히 수익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바탕이 된 것이다. 일차원적인 기부나 자선 사업이 아닌 ‘부의 나눔’ 말이다.”



 - 부유층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이란 얘기인가.



 “40여 년 전 록시땅을 설립할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연대의식이나 공존에 대한 철학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이는 브랜드의 DNA라 할 수 있다.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얘기인데, 록시땅 최초의 지면 광고는 빈곤층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인쇄 매체 마카담(Macadam)에 실렸다. 실업자나 노숙자들이 직접 매체를 판매하고 거기서 얻은 수익금을 가져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매체로 90년대 초반에 출간됐다. 당시 광고 문구에 ‘록시땅은 원래 광고를 하지 않는 기업입니다만, 마카담의 성공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광고를 게재합니다’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록시땅의 로고가 들어가는 곳이라면 반드시 록시땅의 가치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런 철학이 회사의 이윤 창출의 목적과 상충하지는 않았나.



“록시땅을 창립할 때가 스물세 살이었다. 당시의 나는 낭만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던 문학도였다.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때의 생각들은 어쩌면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제품을 통해 소비자에게 서서히 공유되면서 록시땅이 단지 향긋한 제품을 파는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로 각인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부분들이 록시땅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본다.”



보송과 라크루아(오른쪽). 록시땅은 아를 국제 사진전에 대한 후원과 함께 라크루아가 예술 감독을 맡은 사진전을 별도로 지원했다.
 - 가이거 CEO나 경영진과의 마찰도 많았을 것 같은데.



“제품 개발과 마케팅 등 큰 지출이 있을 때 경영자는 직원의 업무 추진력을 믿거나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가이거는 직원들을 믿어주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견적서의 숫자를 들여다보는 대신 제품 속의 ‘트루 스토리(true story)’를 귀담아 듣는 사람이다. 이런 전폭적인 믿음이 록시땅을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이거의 부인은 우리 둘을 두고 ‘오래된 연인’ 같다고 놀린다.”



 - 왜 뼛속까지 경영인인 그가 당신의 철학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나.



 “하하하. 재미있는 질문이다. 마침 가이거가 2주 전에 록시땅 재단(사회공헌 활동을 위한 비영리 재단)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e메일을 보냈다. 록시땅 재단을 만들자고 한 사람이 바로 가이거다. 우리의 오래된 사회적 활동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기획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틀’을 만드는 게 그의 역할이다. 그는 록시땅 재단의 활동을 강화하면 할수록 우리의 뿌리와 진정성이 더 확고해지고, 이러한 브랜드만의 독특한 철학과 가치들이 경제적인 이윤 창출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는 시스템을 누가 바꾸려 하겠나(웃음).”



 - 단기간에 성장한 한국의 기업들은 아직 확고한 브랜드 철학이나 정통성을 확립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록시땅의 시어버터 라인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소비자에게 사회적인 담론을 던지고, 진정한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핸드 크림 하나가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기회를 제공해 마침내 기업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처럼 기업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환경과 고객의 수요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브랜드에 대해 감히 조언하자면 한국의 젊은 세대가 과연 어떤 문화적, 인류적, 그리고 사회적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궁금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라는 것이다. 매우 한국적인 이슈인 통일 문제가 대표적 예가 될 수 있겠다. 기업은 개인의 궁금증을 사회 공동의 화두로 끌어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록시땅은 사회공헌 사업뿐 아니라 문화·예술 사업도 후원하고 있다. 올해는 아를에서 열린 크리스티앙 라크루아(Christian Lacroix)가 예술 감독을 맡은 사진전을 후원했다. 라크루아는 프랑스에서 두 차례나 ‘황금 골무상’을 받은 최고의 디자이너였지만 예술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2009년 파산했다. 최근에는 오페라 무대의상 디자인, 호텔 인테리어 등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나간 ‘비운의 천재’라 불린다.



보송은 이번 행사 역시 문화·예술 후원을 통한 사회공헌이냐는 질문에 “아를에서 영감을 받은 록시땅의 신제품을 알리기 위한 문화적 접근법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브랜드 철학이 담긴 사회적 공헌과 제품의 론칭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후원은 구분돼야 한다”면서다.  



아를=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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