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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어린이책' ⑤ 『사과가 쿵 !』

중앙일보 2014.07.26 01:40 종합 22면 지면보기


사과가 쿵!

배불리 먹고, 빗줄기도 피하는 커~다란 사과 속 꿈 같은 세상

다다 히로시 지음

정근 옮김, 보림

21쪽, 8500원




“커다란, 커어다란 사과가 쿵!”



 벌판에 빨간 사과 한 알이 쿵 떨어졌다. 지면 한 가득 채운 사과, 남다른 시작이다. 집채만한 사과 아래서부터 두더지가 파고 올라온다. “사각 사각 사각, 아 싱싱해.” 다람쥐·토끼·돼지도 나타나 냠냠냠 먹고, 사자·곰은 선 채로 “날름 날름, 와사삭 와사삭” 먹는다.



 작은 동물 먼저, 이미 배불리 사과를 먹고 난 동물들은 뒤에 오는 이들에게 양보하고는 사과 뒤에 조르륵 앉아 얌전하게 기다린다. 사과는 한정없이 크니 다툴 필요 없다. 비가 내려도 걱정 없다. 먹고 난 사과 속으로 다 함께 옹기종기 비를 피하면 되니까. 의성어·의태어가 자아내는 리듬 때문일까, 무릎에 앉아 숨죽여 집중하던 아이는 어느새 까르르 웃는다.



 1981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그림책 『사과가 쿵!』이다. 국내에는 1996년 첫 출간 이래 100만 부 이상 팔렸다. 본지가 교보문고·예스24와 집계한 지난 10년간 어린이책 스테디셀러에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버나뎃 로제티 슈스탁 저, 보물창고)에 이어 각각 2·3위를 기록했다. <중앙일보 4월 19일자 18면>

 이 책이 국내에서 지난 18년간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뭘까. 보림출판사의 최정선 기획위원은 “모리스 샌닥, 존 버닝햄 같은 이름난 저자의 것도 아니고 겉모습이 새롭고 멋지다 할 수도 없는, 기본에 충실한 책”이라며 “흥미로운 시작과 만족스러운 결말, 사과의 맛과 먹는 소리 등 오감에 호소하는 내용이 아이들의 관심을 끈 듯하다”고 설명했다.



 번역은 동요 ‘텔레비전’(‘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을 지은 정근(84)씨가 했다. 의성어·의태어의 율동감을 잘 살린 번역으로 꼽힌다. “일본서도 출간 당시엔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도서관·유치원 등지에서 아이들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책이었다더라. 국내에서는 한층 더 뜨거운 반응을 얻었는데, 좋은 번역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최 기획위원은 덧붙였다.



 아이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다양한 책을 접한다. 태교 동화부터, 갓난아기의 시지각 능력에 맞춰 흑백 도형들로 가득 채운 초점책이 그렇다. 이어 방수 재질로 만든 목욕놀이책, 건전지를 넣어 동물 울음소리를 내는 책까지. 책의 이름을 한 다양한 장난감들을 접하게 되는 영아들이 아마도 처음으로 만나게 될 본격 이야기책이 바로 이것일 게다. 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다중지능 발달을 돕는다는 책, 엄마 대신 잔소리를 하는 생활동화, 그리고 어른도 모르는 잡학상식을 풀어놓는 과학동화, 통섭과 융합이라는 사회트렌드를 발빠르게 흡수한 어린이책 등을 또 만나게 될 거다.



 그러나 시작은 이랬다. “동생 먼저, 사과는 충분하니 기다리렴. 친구에게 나눠주길 아까워하지 말아라. 비가 좀 오면 어떠니, 다 함께 피하면 되지” 하고 넌지시 말해주는 책. 아이는 커가며 더 다양한 책을 접하고, 더 복잡한 세상을 경험하겠지만, 이 시작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동물 비율도 제멋대로인 단순한 그림의 이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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