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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누구를 위하여 교과서는 만들어지나

중앙일보 2014.07.26 00:31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예윤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애들아, 역사 수업 지루한 건 아는데 선생님 좀 봐줘.”



 지난 5월 나는 열다섯 살 학생들의 관심을 듬뿍 받는 교생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도 외면 받는 시간이 있었다. 내 담당 교과인 역사 수업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밑줄을 따라 긋다가도 까무룩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나름의 방책으로 흥미로운 야사(野史)나 대학생활 이야기도 곁들여봤지만 학생들의 눈이 반짝이는 것은 딱 그때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전의를 다지며 교과서를 펼쳤다. 발해사 220여 년이 교과서 한 장 반에 숨 가쁘게 서술돼 있었다. 이 왕이 건국하고, 저 왕이 어떻게 했고, 언제 멸망했다…. 배경이나 인과관계 설명은 거의 없는 사실의 나열이었다. 토론으로 채워야 할 탐구활동은 ‘닫힌’ 질문이었다. 이미 앞 페이지에는 교과서가 원하는 답이 병렬식으로 제시돼 있었다. 결국 학생들이 할 일은 오직 교과서 본문을 머릿속에 우겨 넣는 것이었다. 졸릴 만했다.



 한숨을 쉬며 교과서를 덮다가 문득 내 중학교 시절 교과서가 생각났다. 국사책을 책장 구석에서 꺼내 들었다. 마음이 싸하게 가라앉았다. 교과서는 10년 전과 무서우리만치 똑같았다. 표지는 화려해졌고, 국정 교과서에서 검정 교과서로 바뀌었지만 알맹이는 그대로였다. 내용 흐름이나 서술 방식, 구성의 변화는 없었다.



 진보 교육감 등장 이후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다. 토씨마저 거의 똑같은 두 권의 교과서를 보며 어떤 차이가 나는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갈등인지 묻고 싶다. 물론 역사 교과서 논란은 고대·중세사 내용보다는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차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흡수하는 수동적 객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달달 외우는 식의 역사 교과서는 지루할 뿐 아니라 자칫 특정 정치성향을 심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이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도록 하는 교과서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사진은 물론 당시 유행가 가사, 만화·잡지 표지 등 가공되지 않은 1차 사료를 풍부하게 싣고 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 병사가 게이샤와 춤추는 사진까지 수록돼 있다고 한다. 학생의 흥미를 끄는 동시에 다각적인 시선으로 역사를 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사진의 스토리를 상상하고,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해석을 다듬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어엿한 역사가로서 수업의 주인공이 된다.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역사 문제다. 현 교과서로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은 저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열심히는 하고 싶은데 역사는 너무 외울 게 많고 어렵다던 학생의 답답한 얼굴이 떠오른다. 누구를 위해 교과서가 만들어지는지 돌이켜볼 때다.



김예윤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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