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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큰 고독 준 사람 네 작은 입·목덜미가 …" 최정희를 연모한 이상

중앙일보 2014.07.24 03:03 종합 22면 지면보기
전위시(前衛詩) ‘오감도’와 단편소설 ‘날개’의 작가 이상(1910∼37). 지금까지 그의 연인은 다방 제비를 함께 차린 기생 금홍, 훗날 화가 김환기와 결혼하며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꾼 아내 변동림(1916∼2004) 정도가 알려져 있었다. 여기에 시인 김동환의 아내였던 소설가 최정희(1912∼90)가 보태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가 1935년 최정희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핑크빛 사랑의 편지가 발견되면서다.


25세 때 쓴 연애편지 발견

 단국대 권영민 석좌교수는 23일 “최정희 선생의 딸인 소설가 김채원씨가 보관하고 있던 편지 300여 통을 최근 검토하던 중 시인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며 사본을 공개했다. 필체, 편지 끝 ‘李箱(이상)’이라고 쓴 한자 서명까지 같아 이상의 편지가 틀림없다고 했다.



 편지는 첫 머리에서부터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라며 사랑을 원망하는 구절이 등장한다. 돌아오는 길 혼자 걸으며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라며 소심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써두었으나 부치지 않은 편지를 옮겨 소개한 대목에서는 “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라면서도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 다고”라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사랑의 파탄 직전, 절망적인 상태의 편지인 것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상의 편지는 김기림에게 보낸 7통 등 10통에 불과하다. 연애편지가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 최정희는 23세 이혼녀였다고 한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재원으로 미모까지 갖춰 조선일보·삼천리 등의 기자로 활동하며 시인 백석 등 뭇 남성들의 구애를 받았다고 한다. 권 교수는 24일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리는 ‘오감도 80주년 기념 특별 강연’에서 편지를 공개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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