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KY졸업장이 성공 보장? … 전문대 엑스포 찾는 엄마들

중앙일보 2014.07.24 01:26 종합 14면 지면보기
#19일 오후 2시 경기도 일산 킨텍스의 ‘전문대 엑스포’ 전시관. 한국관광대 호텔제과제빵학과 ‘쿠키 만들기’ 체험 부스에 초등학생과 중학생 20여 명이 몰려 있다. 흰 조리복을 입은 이 대학 1학년 김예린(20·여)씨가 색색의 설탕 반죽을 들고 쿠키에 바르자 학생들의 어색한 손놀림도 빨라졌다. 김씨는 “제빵학과를 졸업하면 빵집이나 호텔, 음식점에서 오늘처럼 스스로 디자인한 쿠키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1 딸과 함께 쿠키를 만들어본 김지은(42·여)씨는 “SKY대(서울·고려·연세대) 졸업장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며 “제빵에 관심 있는 딸에게 공부 말고 다른 길도 있다는 걸 보여주러 왔다”고 말했다.


[꿈꾸는 목요일] 초·중생 조기 진로교육
확실한 진로 정해야 학습의욕 생겨
초등학생 때부터 직업체험 나서

 #같은 시간 경인여대 피부미용과 체험부스. 초·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30여 명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손톱에 하트 무늬를 새긴 초등학교 4학년 김지현(10)양은 “네일아트에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생 언니들이 몇 시간 동안 고개를 푹 숙인 채 작은 손톱에 칠을 하는 걸 보니 쉽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제주한라대 마사학과의 승마부스와 부천대 지능로봇과 체험부스는 남학생으로 가득 찼다. 초2 아들에게 가상 말타기를 해보도록 한 오은정(38·여)씨는 “애들이 원하는 진로는 막고 공부만 시켰다가 엇나간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다”며 “취업 잘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신생 직업을 아이에게 접하게 해주는 것도 엄마의 역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7~19일 개최된 전문대 엑스포에는 12만 명이 방문했다. 올해로 2회째인 이 행사엔 주로 특성화고 재학생들이 관람을 오는데, 이번에는 초·중학생 자녀와 함께 온 학부모가 3만 명가량에 달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이남식 엑스포 추진위원장(계원예술대 총장)은 “전문대에 관심이 있어 행사장을 찾았다기보다 자녀에게 다양한 진로를 체험시켜주려는 학부모가 많았다”며 “이른바 ‘확실한 직업’이 줄어들면서 과거엔 별로 신경을 안 쓰던 진로교육이 어릴 때부터 미리 챙겨야 하는 분야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경향에 따라 진로교육을 시작하는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초2 아들을 둔 김영아(44·여)씨는 “진로가 확고해야 공부할 동기도 생긴다는 생각에 방학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잡월드’ 같은 행사를 찾아다닌다”고 말했다. 대학 탐방을 시켜주는 진로교육 업체 UOD의 권태욱(32) 대표는 “대학 탐방이라면 고교생만 할 것 같지만 초·중학생 학부모도 30%가량 차지한다”며 “요즘은 ‘중1 딸이 기자를 하고 싶어 하는데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스튜디오를 견학시켜 달라’거나 ‘초6 아들이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데 서울대 물리학과 실험실에서 실습 기회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구체적인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진로교육은 입시에서도 중요해졌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대입 수시모집 지원 때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항목이 ‘뭘 하고 싶고, 어떤 준비를 했느냐’다”라며 “진로교육은 결국 이 항목을 채워넣는 과정”이라고 했다. 박재현 서울대 입학본부장도 “어릴 때 정한 진로에 맞춰 선택과목을 배우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경시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수시 포트폴리오부터 다르다”고 귀띔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1학년 김태은(19)군은 “중학교 때부터 경제학을 배우고 싶어 관련 책을 읽었고 방학 때마다 경제 캠프나 청년 포럼 등에 참가해 해당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났다”며 “경험한 내용을 매 학기마다 정리해 수시 자기소개서에 활용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뤄지는 진로교육 여건은 아직 열악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초등학교 6학년 부장교사 82명에게 물었더니 성적 위주의 입시 경쟁(35%)에 이어 콘텐트·체험프로그램 부족(32%)과 예산·인력 부족(15%) 등이 진로교육의 장애 요인으로 꼽혔다. 충북 진천에 있는 초등학교의 윤모(33) 교사는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고 직업을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진로 체험을 시키고 싶지만 대도시가 아니라 환경이 더 나쁘다”고 털어놨다. 2016년부터 전 중학교에 도입되는 자유학기제의 모델이 된 아일랜드에선 90년대부터 학교마다 진로교육 전담 코디네이터가 있어서 학생·학부모가 상담한 뒤 체험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체험 기간도 2주부터 3~4개월까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조기 진로교육을 위해선 학부모들이 자녀가 대학에서 헤매는 것보다 초·중·고 때 진로를 고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주희 직업능력개발원 박사는 “한국에 1만1000여 개 직업이 있는데 초등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희망 직업은 극소수”라며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은 진로교육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직업능력개발원 측은 가장 먼저 자녀가 원하는 진로가 무엇인지 이해한 뒤 직업 체험 등 진로 탐색 과정을 갖고 진로 디자인의 순서를 밟으라고 권한다. 최승복 교육부 진로교육정책과장도 “‘이것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고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자녀가 한번 빠진 진로에 대해선 한 달은 참고 지켜봐야 하며, 최소 세 가지 진로와 관련해 아이들에게 살펴볼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름방학은 진로 체험에 적기다. 휴가 때 엄마·아빠가 일하는 직장이 어떤 곳인지 견학하고 체험해 보거나 학교·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진로 캠프에 참가해 보면 좋다. 희망 대학을 탐방해 볼 수도 있다. 지역 청소년수련관이나 교육청 위(wee)센터에선 진로 정보를 얻고 전문가에게 진로심리검사·진로상담을 받을 수 있다.



일산=김기환 기자

박은서(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인턴기자

사진=이영환 인턴기자



[특집]그배 세월호, 100일의 기록 더보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