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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목치승, 등번호 106번 … 낯설지만 아름다운 야구 선수

중앙일보 2014.07.24 00:29 종합 26면 지면보기
황목치승(29·사진). 낯선 이름의 프로야구 선수다. 106번. 1군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등번호다.


일본인 조부 성 딴 LG 내야수
좌절 딛고 독립구단 거쳐 프로 1군

 지난 22일 저녁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황목치승이 상위권에 올랐다. LG 내야수 황목치승은 22일 광주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 4회 유격수 오지환(24)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지난 16일 삼성전에서 대주자로 기용돼 처음 1군 경기를 치른 데 이어 두 번째 출전이었다. 황목치승은 안정적인 수비를 보였고, 7회에는 희생번트도 깔끔하게 성공했다. 빛나진 않았지만 알찬 활약이었다.



 흔치 않은 그의 이름처럼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의 성 ‘황목’은 일본인 조부의 성 ‘황목(荒木·일본명 아라키)’ 그대로다. 조부는 제주에서 한국인을 만나 결혼했고, 황목치승도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제주에서 자랐다. 제주를 사랑했지만 야구를 더 사랑했다. 고교야구 명문팀이 없는 제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황목치승은 더 큰 무대인 일본으로 향했다. 교토 국제고 시절 꽤 실력 있는 선수로 통했다. 그런데 명문 아세아대 입학 전 왼무릎 십자인대와 후방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고, 2년간 그라운드를 떠났다. 일본 프로팀 입단에 실패했고, 사회인팀에서 뛰다 3년 만에 발목 인대를 또 다쳤다.



 야구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황목치승은 아버지 일을 도우며 평범하게 지냈다. 하지만 야구를 잊지 못한 그는 국내 유일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다. 김성근(72)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그는 원더스의 1번 타자로 우뚝 섰다. LG는 지난해 10월 황목치승을 스카우트했다.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다 돼서 프로선수의 꿈을 이뤘다.



 프로의 벽은 높았다. 그의 신분은 신고선수(연습생)였다. 황목치승은 원더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꾸준히 노력했고, 퓨처스(2군) 리그 53경기에서 타율 0.316, 18타점, 18도루를 기록했다. 지난주 드디어 1군에 올라왔지만 그의 등번호는 여전히 106번이다. 프로야구에서 세자릿수 번호를 쓰는 1군 선수는 황목치승과 최현정(118번·KIA)뿐이다.



 황목치승은 “처음 1군에 왔을 땐 많이 긴장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 적응이 좀 되는 것 같다. 세자릿수 등번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웃었다. 양상문 LG 감독은 “황목치승의 수비를 보면 (명유격수 출신인) 유지현 LG 코치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고 발이 빠르다. 무엇보다 성실한 선수라서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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