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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월호 100일 … 슬픔과 아픔 나누는 자원봉사

중앙일보 2014.07.24 00:04 종합 29면 지면보기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4월 16일 오전 8시48분. 성장은 했으나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앞만 보며 물질적 성장으로 치닫던 우리 사회도 침몰시켰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100일. 사고의 원인 규명과 수습 과정에서 원칙 부재와 부정직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충격과 분노, 슬픔과 우울이 대한민국을 점령했다. 소비자 심리지수(CCSI)가 하락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갈등과 불안이 고조되면서 좀처럼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인간은 재난, 분쟁, 갑작스러운 사고 등으로 가족·친구가 사망하거나, 생계를 잃게 되었을 때 심각한 고통을 받는다. 이 고통에는 슬픔·상실·애도·분노·좌절감이 함께 따라온다. 타인의 슬픔이 내 기억 속 슬픔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공허한 실체와 진실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절망의 바이러스를 치유할 희망의 백신은 진정한 위로와 나눔을 통한 치유와 사회통합이다. 이를 위한 사회적 심리지원 콜센터가 중요하다. 적십자사 콜센터에는 “학생들이 아직 실종자로 남아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고, 격한 감정에 빠져든다. 바다에서 사망한 학생들처럼 나도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세월호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주목을 받진 못하지만 100일째 묵묵히 세월호 사고를 보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경기도 안산의 한 자동차부품회사에 다니던 심보길(46)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처음 사고 소식을 접하고 그는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안산 합동분양소로 향했다. 슬픔을 추스르기 힘든 유가족을 대신해 다른 봉사자들과 분향소에서 아픔을 함께했다. 그렇게 100일이 흘렀다. 유가족들이 “고맙다”며 건네는 수박 한 조각에 더위를 잊었고 희망의 빛을 보았다고 한다. 심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세월호 현장에 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돈보다 더 값진 경험과 희망을 얻었다”고 말한다. 봉사활동에서 자신이 위로와 치유를 받았다는 것이다.



 심씨뿐만이 아니다. 한결같이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 안산 합동분향소를 지켰던 2만1000여 명의 자원봉사자 모두가 “봉사를 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봉사가 서로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성숙하게 했다.



 미국 국가봉사단(AmeriCorps) 연구 자료에 따르면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시민참여의식과 사회적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건강·대인관계·여가 등에서도 만족도가 높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민간복지자원 확충을 위한 자원봉사 활성화 방안의 모색』). 미국이 9·11 테러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원동력은 자원봉사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미국 전역에서 200만 명 넘는 자원봉사자들과 비영리단체가 복구를 도왔다. 미 백악관의 보고서는 “수많은 자원봉사원, 비영리단체의 구호활동이 대재앙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미국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진정한 위로는 단지 느끼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강력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을 비롯한 294명의 희생자와 아직도 진도 바다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실종자에게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다.



 적십자 홍보대사인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기부한 세월호 추모곡 ‘천 개의 바람이 되어’의 영시 원문에는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라는 부분이 있다. 이 노래의 가사같이 우리 모두 참담한 현실에 눈물만 흘리지 말고 구부러진 무릎을 세워 희망의 씨앗을 슬기롭게 심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시대에 ‘원칙이 지켜지는 정직한 사회’라는 도전과제를 제시했다. 봉사자의 조용한 변화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려는 정신적 가치에서 시작된다.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며 함께 참여하는 자원봉사 활동이 현대 사회의 아픔에 희망을 심어준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사회가 건강해지고 소통과 협력으로 사회통합이 이루어져 가는 새로운 한 길을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봉사는 타인의 고통을 걱정하고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힘과 행동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세월호가 남긴 소중한 교훈을 바탕으로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와 통합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자원봉사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자원봉사와 나눔 문화의 성숙을 위해 평소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 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 재난이나 재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훈련된 봉사 조직과 인력을 보유할 수 있다. 이제 꽃다운 생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데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어 노력해야 한다.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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