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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왕' 차용규는 대리인 … 블라디미르 김 전 회장이 실소유주"

중앙일보 2014.07.21 02:30 종합 23면 지면보기
차용규(左), 블라디미르 김(右)
카자흐스탄 구리광산 회사인 카작무스를 런던 증시에 상장시켜 1조원이 넘는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거부(巨富)로 떠올랐던 차용규(58) 전 페리 파트너스 대표. 그의 '구리왕' 신화는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삼성물산 1800억대 배임 혐의고발 무혐의 처분
카작무스 지분 사들인 페리 파트너스 실소유주 확인

차씨는 최근 "나는 카자흐스탄 실력자인 블라디미르 김(54) 전 카작무스 회장의 대리인이었으며 실소유주는 김 전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2004년 카작무스 지분 600만 주(24.7%)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다.



1990년대 초반 삼성물산의 독일 주재원이었던 차씨와 카작무스의 인연이 시작된 건 95년이었다. 삼성물산이 5년간 카작무스의 위탁경영을 맡으며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 지점장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블라디미르 김은 당시 카작무스의 현지인 대표였다. 고려인 3세인 김 전 회장은 소련 몰락 이전 공산당 알마티 지역위원장이던 현지 실력자였다. 삼성은 91년 말 카자흐스탄에 진출했을 때 그를 영입해 첫 지점장을 맡겼다. 이어 삼성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으로부터 카작무스 위탁경영권을 따내자 경영을 맡게 됐다.



이후 현지인 대표와 삼성측 이사로 사업파트너가 된 두 사람은 소련의 국영기업 시절 파산 위기에 놓여 있던 카작무스를 세계 9위의 구리제련업체로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지분 42.5%를 확보했다. 문제는 2000년 위탁경영 계약이 종료된 후 카자흐스탄 정부가 '자원민족주의'를 내세워 삼성의 구리 독점판매권을 포함한 경영권을 회수하고 지분 매각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삼성물산은 2001년 말부터 2004년 8월까지 3차례에 걸쳐 약 2억달러에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당시 삼성 측 지분을 사들인 곳은 버진아일랜드의 페리 파트너스(24.7%), 네덜란드 쿠프룸 홀딩(15%) 등 조세피난처에 위치한 투자회사들이었다. 실소유주를 확인하기 힘든 페이퍼 컴퍼니였다. 그런데 1년 2개월 뒤 카작무스가 2005년 10월 런던 증시에 상장되면서 페리 파트너스 한 곳의 지분가치만 2조~3조원으로 치솟았다. 페리 파트너스의 명의상 대표였던 차씨가 '구리왕'으로 불렸던 건 그 때문이었다. 2011년 국세청은 차씨가 2006~2007년 페리 파트너스보유 지분 매각으로 1조원대의 차익을 거뒀다며 1600억원 추징을 통보했다가 뒤이은 과세적부심에서 '국내 비거주자'임을 인정해 세금을 취소하기도 했다.



차씨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8월 경제개혁연대가 "삼성 경영진이 카작무스 지분을 헐값에 팔아 회사에 1800억원대 손해를 입혔다"며 이건희 삼성 회장과 차씨를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하면서다. 검찰이 삼성물산과 함께 카작무스에 투자했던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이어 차씨를 직접 소환 조사한 결과, 차씨 뒤에 블라디미르 김이 있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이 삼성측 지분을 사들일 당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웠고, 대통령의 친동생과 재정고문, 정치고문 등 측근들이 카작무스의 이사였던 점도 삼성 측이 지분을 매각한 배경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 이주형)는 지난해 말 경제개혁연대가 고발한 혐의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 측 지분매각은 블라디미르 김 전 회장 등 카작무스 경영진과 맺은 대량매각 약정에 따라 2001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런던 증시 상장 직전인 2005년 6월 발생한 칠레 강진 등 국제 구리가격 급등을 예측할 수 없었던 만큼 배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씨 진술 등을 토대로 지분매각 약정서와 카작무스 및 페리 파트너스 등의 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블라디미르 김이 실소유자라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김은 한때 37억달러(약 4조원) 재산으로 중앙아시아 최대 갑부에 오르기도 했다. 차씨도 그의 대리인으로 수천억대 재산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카자흐스탄 국부펀드 등에 지분 상당량을 넘긴 뒤 지난해 카작무스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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