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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전 시력 잃고 시조에 눈이 번쩍

중앙일보 2014.07.21 00:58 종합 24면 지면보기
19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 시각장애인 시조시인 강춘석(65·사진)씨가 무대에 오르자 순간 긴장이 흐른다.


시조시인협희 50주년 행사서
강춘석씨 작품 암송 박수갈채

 “봄바람/바람이 집적거려 샛눈 뜬 능금꽃을/날렵한 춤사위로 후리는 호랑나비/햇님이 싱긋 웃고서 구름발을 내린다.”



 강씨가 16수나 되는 자작 연시조 ‘성북골’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암송하자 청중의 호기심은 이내 감탄으로 바뀐다.



 건축공사장 현장소장 일을 하던 강씨가 시력을 잃은 건 1993년. 5층에서 추락해 시신경을 다쳤다. 2002년부터 이지엽 경기대 교수로부터 시조 쓰기를 배워 2009년 등단했고 같은 해 시조집 『눈 감아서 더욱 그리운』을, 지난해에는 산문집 『별이 내어준 자리』(이상 고요아침)를 냈다.



 그는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이 시조를 쓸 때 사물의 색깔에 대한 묘사에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고 40대 중반까지 세상을 봤던 나 같은 사람이 도울 게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시조는 곧 강씨의 본업이 됐다. “시조는 현대시보다 우리 정서에 더 잘 맞는 것 같고 여운도 길게 남는다. 기억 속 풍경을 수채화로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쓴다”며 그는 “시조는 정해진 틀이 있어 접근이 쉽고, 감정을 담아내기도 적당한 것 같다”고 예찬론을 폈다.



 강씨의 이날 시조 낭송은 한국시조시인협회(이사장 이우걸) 창립 50주년 기념 ‘시조의 날’ 행사의 주목할 만한 순서였다. 요즘 시조단에서는 시조가 보다 대중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올해 행사의 세미나 주제도 ‘현대시조가 대중적 친화력을 얻는 방법’이었다. 강씨 역시 시조 대중화의 한 사례. 협회는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는 50년사를 제작해 다가오는 50년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날 기념행사는 그런 의지와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올해의 좋은 시조집상과 인산시조평론상 시상식, 제37회 전국시조백일장 시상식, 전임 이사장들의 작품 낭송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25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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