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 대법 "외국인은 보호할 국민 아니다"

중앙일보 2014.07.21 00:12 종합 20면 지면보기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일본 국민에 준하는 법적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4년 가량 끌어온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최종 판결이 나왔다. 결론은 ‘일본 국민이 아닌 탓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인 생활자금 지급 거부 확정
외국인 근로자 늘리겠다면서
사회안전망 문제는 책임 회피

 일본 대법원은 18일 외국인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경우 법적으로 생활보호 대상이 되는 지 여부를 묻는 재판에서 “법률이 보호 대상으로 하는 ‘국민’에 외국인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자치단체가 재량에 따라 외국인에게 생활보호 자금을 지급할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지급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2 소법정의 치바 카츠미(千葉勝美) 재판장은 영주 자격을 가진 중국 국적의 80대 여성이 생활보호법에 근거한 보호신청을 거부 당했다며 오이타(大分)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상고심에서 “보호 대상을 확대하는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외국인은 자치단체 재량에 따라 사실상 보호를 받고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11년 후쿠오카 고등법원이 오이타 지방법원의 2010년 1심 판결을 뒤집으며 “ 영주 외국인도 생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지위를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중국 여성 손을 들어준 것을 다시 뒤집은 것이다. 원고측 변호인단은 원고인 중국 여성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뒤 일본에서 계속 일을 했고 중국어도 못한다며 “국적 이외에는 일본인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난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지난달 발표한 세 번째 성장전략에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를 확대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외국인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NHK는 “앞으로 일본에 와서 일하려고 하는 외국인은 없을 것이며, 어떤 형태로든 외국인 생활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산케이 신문은 19일자 기사에서 이번 판결이 당장 외국인 생활보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자치단체의 재정을 압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상당수 일본 자치단체들은 영주 외국인이나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생활보호 자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급속한 고령화로 외국인 수급자가 늘면서 재정난을 겪고 있다.



 2012년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생활보호자금 전체 수급자는 155만여 가구이며, 이 중 3%인 4만 5600여 가구가 외국인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외국인 수급자 증가율이 전체 수급자에 비해 1.8배 높다. 외국인 수급자를 나라별로 보면 2011년 7월 현재 한국·북한 국적자가 2만 8700가구로 가장 많고, 필리핀 4900가구, 중국 4400가구 순이다. 후생 노동성 담당자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필요하지만 자치단체의 재정 부담 탓에 외국인 수급자 증가가 반갑지는 않다”고 말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